[책의 향기]‘분노 살인’… 왜 평범한 사람이 惡이 되는가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8월 27일 03시 00분


◇나는 오늘 사표 대신 총을 들었다/마크 에임스 지음·박광호 옮김/520쪽·2만2000원·후마니타스

미국 콜럼바인고교 총기 난사 사건의 영향을 받아 만들어진 거스 밴 샌트 감독의 2003년 영화 ‘엘리펀트’. 학교에서 따돌림과 괴롭힘을 당하던 알렉스(오른쪽)와 친구 에릭은 1인칭 슈팅 게임을 한 뒤 학교로 가 총을 난사한다. 동아일보DB
미국 콜럼바인고교 총기 난사 사건의 영향을 받아 만들어진 거스 밴 샌트 감독의 2003년 영화 ‘엘리펀트’. 학교에서 따돌림과 괴롭힘을 당하던 알렉스(오른쪽)와 친구 에릭은 1인칭 슈팅 게임을 한 뒤 학교로 가 총을 난사한다. 동아일보DB
책의 원제는 ‘고잉 포스털(Going Postal)’이다. 이 단어는 1986년 이후 한동안 미국에서 ‘격분하다’라는 뜻으로 쓰였다. 1986년 우체국 직원 패트릭 셰릴이 분노한 채 총기 난사 사건을 일으킨 것을 시작으로 우체국에서만 집배원들의 난사 사건이 잇달아 일어났기 때문이다.

총기 난사 사건은 살인자 개인의 문제에서 연원한 것으로 치부되는 게 보통이다. 그런데 우체국에서만 살인이 일어났다면 다른 배경이 있는 게 아닐까. 저자는 그것이 ‘1970년 우체국 재조직법’이라고 본다. 미국의 우체국은 공기업으로 집배원에게 안정적인 직장이었지만 이 법 이후 이윤을 기반으로 운영되면서 대규모 구조조정을 했다. 집배원들은 언제 잘릴지 모른다는 공포 속에서 가중된 업무를 처리해야 했다. 살인자들은 ‘더 이상 견딜 수 없는 곳’이 된 직장에서 극단적인 방식으로 분노를 표출했다는 게 저자의 주장이다.

1989년에는 인쇄공 웨스베커가 이 같은 ‘분노 살인’을 저지른다. 그 역시 광기에 사로잡힌 사람이 아니라 맡은 일을 잘하는 평범한 사람이었다. 웨스베커는 힘든 업무를 10년 넘게 하면서 스트레스를 호소했지만 회사는 묵묵부답이었다. 그가 업무 전환 문제를 중재위에 제소한 뒤에는 임금 40%를 삭감했다. 동료들은 그를 괴롭혔다. 이 같은 일을 겪으며 평범한 사람이 살인자로 변모했다는 것이다.

이들의 살인이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이뤄지는 것처럼 보이지만 꼭 그렇지만도 않다. 2003년 7, 8월 동안 미국에선 직장 내 ‘분노 공격’ 사건으로 25명 이상이 죽었고, 17명이 다쳤는데 살인자들은 무작위로 사람을 죽인 게 아니라 대부분 자신을 괴롭힌 이들이나 회사 간부를 표적으로 삼았다고 한다.

“난 정신이상이 아니야. … 줄곧 난 조롱과 증오의 대상이었고, 얻어맞으며 살았어. … 이건 순전히 너무 괴로워 몸부림치며 말하는 거야.”

미국 미시시피 주의 한 고등학교에서 분노 살인을 저지른 학생의 말이다. 1990년대 초 이후 총격 사건은 백인 중산층 자녀들이 다니는 학교로 번진다. 2005년 정보당국이 범인인 학생들의 프로필에서 공통점을 찾아내려고 했지만 실패했다. 우등생과 문제아, 괴짜와 인기가 많은 학생, 성격이 천하태평이었던 아이와 반사회성을 보였던 아이가 마구 뒤섞여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상당수 가해자들은 따돌림과 괴롭힘을 당했고, ‘학교는 지옥’이었다. 1999년 콜럼바인고교 총기 난사 사건을 일으킨 에릭과 딜런에 대해 나치 추종, 약물중독, 마피아를 비롯해 다양한 추정이 나왔다. 이들은 그 어느 것에도 해당되지 않는 지극히 평범한 학생들이었다. 전교생이 이들을 게이라고 놀려대면서 일상적으로 폭력을 행사했지만 교사를 포함해 아무도 그게 문제라고 생각하지 않았던 게 잘못이었다.

살인, 더구나 총기 난사 같은 대량 살인은 어떤 이유로도 정당화될 수 없다. 하지만 살인자들을 악마화하지 말고 사건이 발생한 구조적 배경을 이해해야 한다는 게 저자의 접근 방식이다.

저자가 원인으로 지목하는 소득 양극화와 저임금 장시간 노동의 확대, 정리해고, 교육 현장에서 무한경쟁 등은 한국과 다르지 않다. 한국에서도 ‘묻지 마 살인’이 일어나면 개인 성격의 문제나 불우함 등이 부각되는 측면이 없지 않다. 무고한 피해자들을 겨누던 그들의 잘못된 칼끝이 실제 겨눴던 것은 무엇이었을까.

조종엽 기자 jjj@donga.com
#나는 오늘 사표 대신 총을 들었다#마크 에임스#분노 살인#고잉 포스털#going post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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