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향기/독자서평]극한의 고통에 맞서는 용기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8월 27일 03시 00분


[YES24와 함께하는 독자서평]
◇와일드/셰릴 스트레이드 지음/우진하 옮김/552쪽·1만4800원/나무의철학

※지난 일주일 동안 388편의 독자 서평이 투고됐습니다. 이 중 한 편을 선정해 싣습니다.

거친 산정의 등산로에서 등산화 한 짝이 벼랑으로 굴러 떨어진다. 어쩔 수 없이 반대쪽 신발까지 마저 집어 던지고는 슬리퍼에 테이프를 칭칭 감아 터벅터벅 트레킹을 계속한다. 어마어마한 무게의 배낭을 짊어진 채로. 동명의 영화로도 제작된 ‘와일드(2015년 개봉)’는 이 책의 저자 셰릴 스트레이드가 홀로 도전하는 퍼시픽 크레스트 트레일(PCT) 도보 여행기다.

꼬여만 가는 불행한 현실에서 탈출구를 찾아 셰릴은 혼자의 몸으로 여행을 떠난다. 여자 홀로 떠난 여행엔 여러 차례 생명을 위협하는 위험한 고비와 육체적, 정신적 고통도 덮쳐 온다. 만약을 대비해 피임용품을 끝까지 가지고 다니던 저자의 절박함이 고스란히 느껴진다. 고난의 여정 속에서 만난 사람들은 극단적으로 착하거나 악하다. 혼자 여행한다는 것을 알고 겁탈하려고 하는 남자들이 있는가 하면, 여자 혼자 분투하는 것을 응원하고 음양으로 지원해 주는 이들도 있었다.

PCT는 미국 캘리포니아 주 남부 멕시코와의 국경에서 시작해 오리건 주를 거쳐 워싱턴 주 끝 캐나다 국경에서 끝이 난다. 미국 서부를 종단하는, 무려 4286km에 달하는 하이킹 길이다. 거친 등산로와 눈 덮인 고산지대, 9개의 산맥과 사막, 광활한 평원과 화산지대까지…. 인간이 만날 수 있는 모든 자연을 거쳐야 완주할 수 있다는 PCT는 평균 152일이 걸리는 극한의 도보 여행 코스다. 한번 들어가면 다시 나오기도 쉽지 않은 데다 폭설이나 화재 같은 뜻하지 않은 재해로 수개월의 노력이 수포로 돌아가기도 해, 연간 약 125명 정도만이 겨우 성공하는 극한의 여정이다.

이 극한의 여정을 왜 선택했을까? 아버지의 학대와 가난으로 불행한 어린 시절을 지냈고, 그 자신도 이혼 뒤에 난잡한 생활 속에서 망가져 가는 자신의 삶을 되찾겠다는 일념으로 준비도 없이 극한에 뛰어들었다. 흔히 홀로 떠나는 여행은 자신을 돌아보는 소중한 시간이 된다고 하지만, 때론 처절한 외로움과 고독에 직면할 수도 있다. 절대 고독의 공간에서 몸부림치고, 몇 번의 생사기로를 넘나든 거침없는 그의 경험담은 우리에게 무자비한 현실 속에서도 치열하게 도전하는 내면을 보여 주는 것이 아닐까 한다.

강창구 전남 순천시 왕지3길
#와일드#셰릴 스트레이드#퍼시픽 크레스트 트레일#도보 여행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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