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25일 가계 부채 대책을 내놓았다. 주택 공급을 줄여 집을 사기 위해 돈을 빌리는 수요를 잡겠다는 게 골격이다. ‘(돈 등을) 빌리다.’ 한데 이 말, 언중의 말 씀씀이가 낱말의 쓰임새를 바꿔버린 경우다.
예전엔 ‘빌다’는 남의 물건을 돌려주기로 하고 가져다 쓰는 것이고, ‘빌리다’는 내 물건을 돌려받기로 하고 남에게 내어 준다는 뜻이었다. 사람들이 둘의 쓰임새를 구분하지 못하자 1988년 표준어 규정은 두 단어의 의미를 모두 담은 말로 ‘빌리다’만을 표준어로 삼았다. 그러니 나중에 청산할 것을 전제로 남에게서 돈을 가져왔을 때도, 남에게 돈을 주었을 때도 ‘빌리다’가 맞다. ‘빚쟁이’도 그렇다. 남에게 돈을 빌려준 사람이나 빚진 사람 모두를 낮잡아 이르는 말이다. 말글살이가 편리해지는 건 좋은데 혼동하기 쉬운 것도 사실이다.
‘빌다’에는 물론 다른 뜻도 들어있다. 잘못을 용서해 달라거나 소원을 청할 때, 남의 물건을 공짜로 달라고 할 때도 쓴다. ‘빌어먹다’는 남에게 구걸해 거저 얻어먹는 걸 말한다.
그러고 보니 ‘빌리다’를 써야 할 자리에 ‘빌다’를 잘못 쓰기도 한다. 왜 있잖은가. 연말 각종 시상식에서 수상자들이 꼬박꼬박 챙기는 인사말 가운데, ‘이 자리를 빌어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는 ‘이 자리를 빌려…’라고 해야 한다. 자리는 빌리는 것이므로.
임대(賃貸)와 임차(賃借)의 쓰임새를 헷갈려하는 이도 많다. 임대는 ‘돈을 받고 자기의 물건을 남에게 빌려주는 것’이고, 임차는 ‘돈을 내고 남의 물건을 빌려 쓰는 것’이다. 집주인은 임대를 하고 임대료를 받고, 세입자는 임차를 하고 임차료를 낸다. 그러니 도심의 신축 빌딩 등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임대 문의’는 ‘임차 문의’가 옳다. 돈을 내고 이 사무실을 빌려 쓰고 싶으면 문의하라는 얘기다.
한자말에 이끌려 잘못 쓰는 말도 있다. 월세, 월세방이란 뜻의 삯월세(朔月貰)가 그러한데, 사글세가 표준어다. 상추(←상치), 강낭콩(←강남콩)처럼 ‘어원에서 멀어진 형태로 굳어져 널리 쓰이는 것은 그것을 표준어로 삼는다’는 말법에 따른 것이다.
‘돈 따위를 나중에 받기로 하고 빌려주다’를 뜻하는 말은 ‘뀌어주다’다. 많은 이가 ‘꿔주다’를 입길에 올리지만 이는 사전에 없다. ‘뀌어준 돈’, ‘꿔 간 돈’이 바른 표기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