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예술가나 늘 걸작만 쏟아내는 것은 아닙니다. 가벼운 마음으로 내놓은 작품이 예상 밖의 뜨거운 반향을 일으킬 수도 있지만, 나름 공을 들이고 기대도 했던 역작이 묻혀버리는 경우도 있죠.
베르디가 43세 때 발표한 오페라 ‘시몬 보카네그라’도 그랬습니다. 이미 ‘리골레토’ ‘라 트라비아타’를 성공시키며 이탈리아 오페라의 중심으로 떠오른 그였지만, 이 작품에는 청중과 평론가들이 냉담한 반응을 보냈습니다. 이유는 있었습니다. 베르디는 화려하고 힘찬 노래와 중창, 합창들을 죽 엮어내는 기존의 스타일에서 벗어나 극적으로 밀도가 높고 중후한 작품을 쓰려 했습니다. 그런데 의욕이 앞선 나머지 사람들의 주목을 받는 ‘포인트’를 잡지 못한 것입니다. 그는 지인에게 보낸 편지에 ‘한결 나은 작품을 쓰려고 했는데, 뒤돌아보니 잘 해내지 못한 것 같다’고 썼습니다.
그렇지만 이 작품이 그대로 묻혀버리지는 않았습니다. 24년이 지난 뒤 베르디는 이 작품에 대대적인 손질을 해 다시 발표했습니다. 악보를 다시 펼쳐보니 작품의 숨은 매력과 함께 어떤 부분을 손보면 충분히 승산이 있겠다는 점이 보였던 것입니다. 1881년 밀라노 라스칼라 극장에서 이루어진 재공연은 대성공이었고, 이 작품은 베르디의 걸작 중 하나로 자리 잡았습니다.
이 과정에서 큰 공헌을 한 인물이 작곡가 겸 오페라 대본작가였던 아리고 보이토입니다. 그는 한때 베르디의 음악이 시대의 새로운 경향을 따라가지 못한다고 질타했지만, 결국 베르디 작품의 위대함을 인정하고 협력에 나섰습니다. 그 첫 단추가 ‘시몬 보카네그라’의 개작을 위해 대대적으로 대본을 고쳐준 일이었습니다. 이후 그는 셰익스피어의 희곡 ‘오셀로(Othello)’를 바탕으로 오페라 ‘오텔로(Otello)’ 대본을 써서 베르디가 만년의 걸작을 남기는 데 큰 공헌을 했습니다.
31일 서울 롯데콘서트홀에서는 정명훈이 지휘하는 라스칼라 오케스트라와 합창단이 ‘시몬 보카네그라’를 콘서트 형식으로 공연합니다. 주인공 시몬 역의 바리톤 시모네 피아촐라 등 유럽에서 온 출연진과 함께 2013년 ‘LG와 함께하는 서울국제음악콩쿠르’에서 2위 입상한 베이스바리톤 김주택 씨가 평민의 우두머리인 파올로 역으로 출연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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