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중 하나는 이제 떨어진다는 거죠? (…) 살다의 반대말은 죽다가 아니야/떨어지다지 (…) 하나만 남았다/나만 남았다//오늘부터 나는 우리라는 말을 쓸 일이 없게 된다’(‘서바이벌’에서)
오은 씨(34)의 새 시집 ‘유에서 유’(문학과지성사)의 반응이 심상찮다. 주문량이 몰리면서 출간 20일 만에 발행부수가 6000부다. 젊은 시인에게 소감을 묻자 “아직 실감이 나진 않는다”며 겸손해했다.
시집 ‘호텔 타셀의 돼지들’ ‘우리는 분위기를 사랑해’가 큰 주목을 받았던 것을 생각하면 세 번째 시집의 인기는 일찍이 짐작됐다. ‘오은’ 하면 떠오르는 ‘말놀이’가 새 시집에도 오롯이 담겨 있지만 앞선 시들보다 좀 더 성숙해졌다. “시집을 읽은 지인들이 쓸쓸하다고 하더라. 아마도 그 쓸쓸함이 성숙함에 연유한 게 아닐까 싶다”고 그는 말했다. 빅데이터 회사에 다니는 그는 “일과 조직문화에 익숙해져야 하는 상황 자체가 나를 쓸쓸하게 만든 것 같다”고 덧붙였다.
‘빛나는 졸업장은 곧장 서랍 속으로 들어갈 것이다/서랍 속에서 나날이 빚이 날 것이다’(‘졸업시즌’) 같은 시구처럼 그의 새 작품들에는 사회적 의미가 강하다. 오 씨는 “앞선 시들도 사회의식이 들어간 게 제법 많은데 그때는 말놀이라는 기법 자체가 주목받기도 했고…그 사이에 한국이 더 살기 어려워진 것도 한몫한 듯싶다”고 말했다. 그는 “카페에서, 길거리에서, 관찰하는 존재로서의 내가 쓴 시가 많이 담겨 있다”고 밝혔다.
그렇다고 특유의 ‘말놀이’가 사라진 건 아니다. 오히려 시집 곳곳에서 통통 튀면서 빛난다. ‘너무에 대해, 너무가 갖는 너무함에 대해, 너무가/한쪽 팔을 벌려 나무가 되는 순간에 대해, 너무가 비로소 생장할 수 있는 자신감을 얻는 순간에 대해(…)’(‘너무’에서) ‘너무’라는 부정적인 단어가 한쪽 팔을 벌리면 ‘나무’라는 단어가 된다고, 그러면 환한 생기로 바뀐다고, 우리가 늘 쓰는 말에는 이렇게 사랑스러운 유희가 있다고 시인은 일러준다.
오 씨는 “한때는 말놀이를 하지 않으려고 애쓰기도 했는데 나도 모르게 불쑥불쑥 하고 있더라”라며 “천성 같은 거구나, 끝까지 가보자, 생각하게 됐다”고 말했다. 그는 “요즘 말놀이의 적수를 만났다. 아재개그”라며 쿡 웃었다. 실패한 말놀이는 아재개그가 될 수도 있다는 생각에 아찔하단다. “아이의 마음으로 말을 장난감 삼아 자꾸 놀다 보면 지금껏 하지 않았던 말놀이에 가 닿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했다. 새 시집을 들고 눈을 반짝이며 말하는 시인은 그 미지의 말놀이에 이미 가까이 가 있는 것처럼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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