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향기]알랭 드 보통이 말하는 결혼 그리고 사랑의 기술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9월 3일 03시 00분


◇낭만적 연애와 그 후의 일상/알랭 드 보통 지음/김한영 옮김/300쪽·1만3500원·은행나무

“그와 커스틴은 결혼을 하고, 난관을 겪고, 돈 때문에 자주 걱정하고, 딸과 아들을 차례로 낳고, 한 사람이 바람을 피우고, 권태로운 시간을 보내고, 가끔은 서로 죽이고 싶은 마음이 들고, 몇 번은 자기 자신을 죽이고 싶은 마음이 들 것이다. 바로 이것이 진짜 러브스토리다.”

러브스토리는 대개 ‘그래서 그들은 결혼을 하고 행복하게 살았다’로 끝난다. 그런데 그 한 줄뿐일까. 알랭 드 보통의 ‘낭만적 연애와 그 후의 일상’은 ‘그래서 그들은 결혼을 했다’는 데서 시작한다.

‘낭만적 연애와 그 후의 일상’은 올봄 영국에서 나온 ‘사랑의 행로(The Course of Love)’의 한국어판이다. 소설은 낭만적 연애를 통해 결혼한 남녀의 일상 이야기다. 열렬하게 사랑해서 결혼한 라비와 커스틴이 처음 다투는 건 사소한 일 때문이다. 이케아에 컵을 사러 갔다가 의견이 맞지 않아 빈손으로 돌아오면서다. 이건 시작이다. 의견은 매번 부딪친다. 섹스는 더이상 짜릿하지 않다. 사랑의 결실인 아이들을 키우는 건 진을 빼놓는 일이다. 과연, 이 결혼생활을 어떻게 지속시켜 나가야 할까?

알랭 드 보통의 철학적 글쓰기는 여전하다. 그는 소설 곳곳에 관계와 결혼에 대한 성찰을 적어놓는다. ‘좋은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끊임없이 이성적일 필요는 없다. 우리가 익혀두어야 할 것은 우리가 한두 가지 면에서 제정신이 아니라는 것을 쾌히 인정할 줄 아는 간헐적인 능력이다.’ ‘불화를 일으키기보다는 우리 자신에게 보다 정확한 이야기들을 들려줄 필요가 있다. 시작에만 너무 얽매여 있지 않은 이야기, 완벽한 이해를 약속하지 않는 이야기.(…)’ 라비와 커스틴이 다투고 목소리를 높이기도 하고 반복되는 생활에 지루함을 참기 힘들어하는 서사는 지극히 일상적이어서 오히려 평범해 보일 정도다. 그런데 작가가 결혼에 대해 풀어놓는 철학적 상념은 독자로 하여금 결혼이란 이런 것이었지, 하고 한 발짝 물러서서 깨닫게 한다.

라비와 커스틴의 시행착오를 거울 보듯 볼 독자도 적잖을 것이다. 사랑과 결혼의 길을 걸어가는 사람들에게 알랭 드 보통은 ‘진정한 러브스토리란 그 시행착오들을 겪어 나가는 것’이라고 일러준다.

김지영 기자 kimj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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