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구에서 95광년 떨어진 별 ‘HD164595’에서 신규 영입된 에이전트31(장선희 기자)과 에이전트9(이지훈 기자). 시차 적응이 되기도 전, ‘지구에 잠입한 외계종족을 색출하라’는 임무를 받고 무작정 짐 보따리부터 푸는데…. 6일 서울의 ‘패션1번지’ 명동의 한 커피숍, 창 너머로 보이는 지구인의 생김새부터 분석하기로 했다. “지구인 여성들은 유독 발그레한 귓불을 갖고 있으며….” 에이전트31이 노트에 끼적이는데 본부의 모든 보고서를 섭렵한 에이전트9가 난데없이 낚아챘다. “귓불이 어떻다고? 여기는 명동! 수상한 종족을 발견했다, 오버.” 》
명동을 배회하던 중, 수상한 광고 하나를 발견했다. “미미치크(귀치크)란? 생기 있고 러블리한 페이스를 연출해줘요. 남심 저격 빵야빵야!”(한 화장품 브랜드 홍보문구)
‘저거면 남심이 저격된단 말이렷다….’ 넋 놓고 구경하던 미혼 에이전트9의 등짝을 내리치며 갈 길을 재촉하는 에이전트31.
최근 지구에서 논란이 된 사진 한 장을 입수했다. 아이돌 출신 설리와 구하라가 ‘존슨즈베이비’ 로고가 새겨진 핑크색 티셔츠에 들어가 서로를 껴안은 모습. 하의는 실종됐고 표정은 다소 야릇한 이 사진은 ‘롤리타 추종’ 논란을 일으켰다. 결국 설리는 인스타그램에서 사진을 삭제했지만 일부 여성 커뮤니티와 맘 카페가 들고 일어섰다. 이들은 존슨즈베이비 본사와 그를 모델로 기용한 외국 화장품 브랜드 회사에 “설리를 모델로 내세우면 제품을 보이콧하겠다”는 이메일을 보내며 거세게 항의했다.
“그런 메이크업, 사진이 바로 롤리타 추종이죠. 아무런 문제의식이 없다는 게 더 혐오스러워요. 아이들이 보고 따라할까 겁나요.”(30대 주부 임모 씨)
비단 연예인한테만 롤리타 추종 화살이 향하는 건 아니다. 유튜브에 ‘인간 복숭아 화장법’을 소개한 뷰티 유튜버 ‘곽토리’는 롤리타 항의가 이어지자 사과 글을 올리기도 했다. “일부 요소가 불편할 수 있는 부분과 겹쳐 보일 수 있을 거란 걸 미처 생각지 못한 점에 대해 죄송한 마음을 전합니다.”
한쪽에선 ‘롤리타 룩’ ‘롤리타 패션’이란 이름으로 물건을 팔고, 다른 쪽에선 잘못된 성적 환상을 준다며 혐오한다. 이렇게 복잡한 별이라니. ‘시차 적응 전에 다시 가방 싸서 튈까’ 고민했지만 궁금한 건 못 참는 둘. 귀빨간족, 이른바 롤리타 패션 마니아와 명동 뒷골목에서 접선을 시도했다. “전 평범해요. 테니스 치마나, 세일러복 블라우스를 즐겨 입어요. 소녀 같은 이미지가 좋아서요. 성도착증과는 제발 연관 좀 시키지 말았으면 해요.”(한모 씨·23)
김은실 이화여대 여성학과 교수를 만나봤다. “페미니스트적 성향을 갖고 있거나 독립적이어도 겉으로 그걸 공개하기는 쉽지 않은 사회예요. 대외적으로는 아직 세상을 잘 모르는, 귀엽고 통제 가능한 여성처럼 보이고 싶은 이중적인 여성 심리가 반영된 거죠.”
이나영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는 이 같은 현상을 ‘역설’이라고 표현했다. “나이 든 여성을 죄악시하는 분위기가 있어요. 젊고 어린 것이 좋다는 이미지를 알게 모르게 수용하는 거고요. 아직까지 여성들은 사회적 약자이기 때문에 사회가 여성들에게 기대하는 이미지나 시선에 부합해야만 살아남을 수 있죠.”
소녀 이미지가 선망되는 사회를 좀 더 들여다봐야겠다는 결론을 내릴 즈음 에이전트2와 41이 길 건너편에서 쑥덕이고 있는 게 아닌가. 저들은 왜 저기서….(다음 회에 계속)
:: ‘롤리타(lolita)’ ::
1955년 출간된 러시아 작가 블라디미르 나보코프의 소설 제목이자 주인공 험버트가 사랑에 빠지게 되는 사춘기 소녀의 이름이다. 어린 소녀에게 느끼는 성적 욕망을 가리키는 ‘롤리타 콤플렉스’는 이 소설 제목에서 유래했다.롤리타는 수동적이고 성숙하지 않은 소녀 같은 여성을 뜻하는 말로 발전했으며 관련 패션, 화장법 등이 1990년대 일본에서 시작해 전 세계적으로 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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