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광표의 근대를 걷는다]당인리 화력발전소와 마포종점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9월 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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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0년부터 전기를 생산해온 서울 당인리 화력발전소.
1930년부터 전기를 생산해온 서울 당인리 화력발전소.
‘강 건너 영등포엔 불빛만 아련한데/…/저 멀리 당인리의 발전소도 잠든 밤/하나둘씩 불을 끄고 깊어가는 마포종점.’ 1960년대 말∼1970년대 은방울자매의 히트곡 ‘마포종점’의 가사 일부다. 당인리 발전소는 현재 서울 마포구 당인동 한강 북단에 위치한 서울화력발전소, 마포종점은 1968년까지 운행됐던 전차의 종점을 말한다.

당인리 발전소는 1930년 11월 건설된 우리나라 최초의 화력발전소다. 90년 가까이 수도권 전기 공급에 중요한 역할을 맡아 왔다. 이 발전소는 한강변에 위치했기에 더욱 명물이 되었다. 우뚝 솟은 굴뚝, 강물에 비친 불빛은 근대기 서울의 상징이었다. 1970년대 한강의 풍경을 그린 그림에 당인리 발전소가 등장할 정도였다. 그러나 환경오염의 주범으로 지목되기도 했다.

1호기(1930년), 2호기(1935년), 3호기(1956년), 4호기(1971년)가 열심히 전기를 생산하다 모두 폐기되었고 지금은 5호기(1969년)가 가동 중이다. 5호기도 2017년 가동을 중단하고 발전설비는 지하에 건설하게 된다. 이에 따라 지상과 4, 5호기를 공원, 복합문화예술 공간으로 바꾸는 프로젝트가 추진 중이다.

옛 서울역(1925년)도 현재 복합문화공간으로 활용하고 있다. 하지만 아쉬움이 많다. 건물을 원래 모습으로 되살리긴 했지만 이곳에서 서울역의 흔적과 기억을 만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이곳이 기차를 타고 내리는 역이었는지, 근현대사의 영욕과 애환이 얼마나 많이 담겨 있는지 제대로 느낄 수가 없다. 서울역이라는 공간의 역사와 본질적 기능에 대한 고민이 빠져 있는 것이다. 그렇다 보니 다른 전시공연 공간과 별 차이가 없다.

당인리 화력발전소 프로젝트는 의미 있는 변신이다. 그러나 전시공연 창작체험 공간 그 이상이어야 한다. 4, 5호기 건물의 모습을 유지하고 거기 어딘가에 기념공간을 만들어 놓는 것으로는 부족하다. 좀 더 전향적인 고민이 필요하다. 근대의 흔적을 보존 활용하는 데 있어 그것이 늘 공연전시체험 공간일 필요는 없다. 핵심은 당인리 발전소의 정체성과 본질이다. 우리 전기와 빛의 역사, 마포종점의 아련함, 환경오염이라는 오명까지. 힘겹게 건너온 20세기 일상의 흔적을 가감 없이 만날 수 있어야 한다. 전시공연 공간도 좋지만 당인리의 역사와 본질을 기억하고 체현하는 일, 그것이 당인리 발전소에 대한 예의다.

이광표 오피니언팀장·문화유산학 박사 kplee@donga.com
#당인리 발전소#우리나라 최초의 화력발전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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