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인과 연주인 100명이 참여해 클럽 ‘야누스’와 재즈 1세대에게 헌정한 앨범 ‘야누스, 그 기억의 현재’(사진)가 7일 발매됐다.
이판근(82·작곡, 이론), 이동기(80·클라리넷), 김수열(78·색소폰), 최선배(76·트럼펫), 그리고 박성연(73·보컬)…. 대한민국 재즈는 박성연이 서울 신촌에 1978년 문을 연 ‘야누스’에서 이들 음악가에 의해 시작됐다. 그들을 위한 음반이다.
기획과 작곡을 맡은 것은 1세대의 ‘막내’로 1986년 야누스에 입문한 피아니스트 임인건(57)이다. 지난해 그는 박성연 이동기의 건강이 안 좋다는 이야기를 접하고는 1년을 꼬박 작곡에 매달렸다. 시대와 생계, 건강에 치여 제대로 된 앨범 제작이 힘들었던 1세대를 위해 신곡을 바치기로 했다.
대모 박성연을 위해 임 씨는 ‘별빛의 노래’ ‘바람이 부네요’ ‘길 없는 길’을 작사 작곡해 헌정했다. 박성연은 지난해 야누스의 운영을 후배 보컬 말로에게 맡기고 요양병원에 입원했다. 지병인 신장질환 때문이다. 투석과 물리치료를 하는 와중에도 박 씨는 일주일에 이틀씩 꼬박 세 달간 길 건너 임대아파트로 나와 이번 앨범 녹음을 위한 노래 연습을 강행했다.
박 씨는 3일 밤 서울 성동구에서 열린 앨범 발매 기념 공연 무대에 휠체어를 타고 올랐다. ‘물안개’ 이후 주로 미국 스탠더드 곡에 천착하던 그가 한국어 신곡을 셋이나 부르는 동안 객석에서 뜨거운 박수와 눈물이 쏟아졌다.
재즈 1세대와 야누스의 공로, 그 아름드리 그림자는 요즘 재즈계에서조차 스러져 간다. ‘본토’인 미국 유학파가 늘면서다. 미8군에서 흘러나온 음반을 닳도록 들으며 채보해 연주하던 시절은 전통의 이름조차 잃어 가려 한다. “그러나 음악을 만들수록 느끼는 것은 제 재즈 인생도, 한국적인 재즈도 뉴올리언스나 뉴욕이 아니라 동숭동 야누스에서 시작됐다는 것입니다.”(임인건)
임인건은 이번에 한국 재즈 이론과 작곡의 선구자였던 이판근 선생에게 반드시 곡을 받고 싶었다. 올 1월 찾아간 선생은 여전히 신곡을 쓰고 있었다. “‘그러잖아도 너 주려고 준비해 둔 게 있어’ 하면서 악보 한 장 건네시더군요. 놀랍게도 악보에는 두 마디에만 음표가 그려져 있고 나머지는 비어 있었죠. ‘이 몇 개 음에 쾌지나 칭칭 나네, 자진모리 다 들어있으니까 잘 연구해 발전시켜 보라고’.” 악보를 들고 와 임 씨는 베이시스트 이원술과 편곡을 시작했다. 앨범의 서곡 ‘I‘ll Remember 이판근’이 됐다.
3일 밤, 박성연은 무대를 마치고 병원으로 돌아갔지만 여전히 후배들 걱정을 했다. “36년 야누스 역사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요? 거기서 시작한 후배들이 부쩍부쩍 늘어서 다시 오는 걸 봤을 때…. 그들이 무대가 없어 아까운 재능들을 못 피우고 있는 걸 보면 지금도 참 아쉬워요.”
그날 밤 무대에 앉아 읊조리는 박성연의 노래는 펄펄 끓는 웅변보다 더 진한 삶의 찬가였다. ‘산다는 건 신비한 축복, 분명한 이유가 있어/세상엔 필요 없는 사람은 없어….’(‘바람이 부네요’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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