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를 ‘탈것’과 ‘지하공간’ 두 단어로 규정하는 것은 억측일까. 그만큼 도시인의 삶은 자연과 함께하기 어렵다. 걷는 것과 자연과 교감한다는 것의 진정한 의미는 무엇일까.
지난해 봄 경남 함양에서 출발해 산청 하동, 전남 구례, 전북 남원을 거쳐 출발지로 되돌아오는 지리산 둘레길 250km를 친구 둘과 13일 동안 줄곧 걸었다. 이른 봄이라 변화무쌍한 날씨가 큰 괴로움이었는데 첫날 기온은 영하 6도, 가장 기온이 높았던 날은 22도였고 종일 비를 맞은 날도 있었다. 네 번째 백수생활을 극복할 힘을 얻기 위해 나선 길이었는데 자연의 강한 생명력으로 채워 돌아왔다. 지금도 눈을 감으면 눈을 이고 있는 지리산 천왕봉과 중봉이 보이던 어느 산등성이의 매서운 바람, 매화 향을 가득 품고 있던 화개의 산들바람, 얼굴을 어루만지던 구례 오미마을의 보슬비, 함양 창원마을의 부드러운 햇살, 산청 백운계곡의 조잘대던 새소리, 하늘이 비좁다고 아우성치던 하동 악양 하늘의 별들을 온전히 느낄 수 있다.
13일 동안 걷기만 해 느린 속도에 적응한 몸은 서울의 빠른 속도에 거부반응을 보여 한동안 버스를 타면 약간의 현기증을 느꼈다. 지하로 내려가는 발걸음도 무거웠는데 지하철을 타고 지하 식당에서 밥을 먹는 일들이 적잖이 거북했다. 지하에 살면서 지하철로 출퇴근하고 지하에서 일을 하는 도시생활. 해가 뜨고 지고 바람이 불고 눈비가 오고 기온이 오르내리는 자연의 변화에서 격리된 생활이니 건강을 해치기 쉽다.
이곳 김천에서는 자주 산을 오르는데 서울과는 달리 집에서부터 걸어가 풍욕(風浴)을 즐기며 걷는다. 지독히 더웠던 어느 여름날 정상에 도착할 때까지 한 사람도 만나지 않았다. 더운 날 평상시에도 인적이 드문 곳이라 윗옷을 벗었는데 맨살을 어루만지는 선선한 바람에 취해 이제는 중독이 되어버렸다. 김천시 운남산을 오르는 호사(豪奢)다.
사람은 원래 걷는 데 익숙하다. 많은 현대인은 도시에서 덜 걷고 많이 타면서 또 상당한 시간을 땅 위가 아니라 땅 아래에서 지내며 자연으로부터 상당히 격리된 삶을 살고 있는데 한 번쯤 일부러 새로운 시도를 해보면 어떨까. 차나 지하철을 버리고 한두 정거장이라도 걸어 보는 것이 그런 시도 중의 하나다. 비록 줄지어 서 있어 멋이 덜한 가로수들이나마 그들이 보여주는 계절과 길가 한 뼘 화단의 꽃이 전하는 아름다운 향기를 발견하는 행운을 만날지 모른다. 볕을 쬐고 바람을 쐬며 땅 위를 걷는 작은 시도가 의외의 활력이 될 수 있다.
※필자(54)는 서울에서 공무원, 외국 회사 임원으로 일하다 경북 김천으로 가 대한법률구조공단 본부에서 근무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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