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의 농담이 짠한 건, 삶과 너무 닮아서…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9월 12일 03시 00분


김중혁 장편 ‘나는 농담이다’

김중혁 씨는 새 장편 ‘나는 농담이다’에서 지구와 우주를 넘나드는 배경, 삶과 죽음을 오가는 인물들을 통해 독특한 상상력을 선보인다. 동아일보DB
김중혁 씨는 새 장편 ‘나는 농담이다’에서 지구와 우주를 넘나드는 배경, 삶과 죽음을 오가는 인물들을 통해 독특한 상상력을 선보인다. 동아일보DB
소설가 김중혁 씨(45)의 새 장편 ‘나는 농담이다’(민음사)의 배경은 우주와 지구를 오간다. 순문학에선 낯선 공간이다.

그런데 김 작가라면 낯설지 않다. 그는 첫 소설집 ‘펭귄뉴스’에서 ‘(음악의) 비트해방운동’이 벌어지는 판타지 공간을 선보였고, 장편 ‘좀비들’에선 살아 있는 시체들인 좀비를 주요 인물로 등장시켰다. 동인문학상, 김유정문학상 등을 수상하면서 문단의 든든한 허리로 자리 잡은 이 작가는 순문학이 장르소설의 소재를 적극적으로 차용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나는 농담이다’는 우주비행사 이일영과 스탠드업 코미디언 송우영의 이야기가 교차하는 작품이다. 이일영은 사고로 인해 모체 우주선에서 분리돼서 우주를 떠돌고 있다. 기내 산소량이 점점 줄어드는 상황에서 그는 관제센터에 메시지를 보낸다. 지구에는 낮엔 컴퓨터 애프터서비스 기사, 밤엔 스탠드업 코미디언으로 일하는 송우영이 있다. 그와 이일영은 아버지가 다른 형제다. 일영과 왕래가 없던 그는 죽은 어머니가 부치지 못한 편지가 일영 앞으로 돼 있는 걸 알고는 당혹스러워한다. 우영은 망설임 끝에 일영을 찾아가 편지를 전달하기로 한다.

이 작품은 지구와 우주가 교차하듯 편집돼 있다. 지구의 우영의 이야기는 평범한 흰 페이지에 적혀 있지만, 우주에서 보내는 일영의 메시지는 밤하늘을 연상시키는 검은 페이지에 실려 있다. 턱없이 멀리 떨어진 공간이지만, 우영과 일영의 이야기는 닮았다. 때로는 진지하고 때로는 농담 같다. 죽음이 예정됐다시피 한 일영의 메시지는 절박하다. 그러면서도 연인에 대한 기억을 전할 때는 애잔하고, 어머니와 이복동생에 대한 얘기를 할 때는 애틋하다. 그러면서도 툭툭 던지는 농담이 짠하다. 우영의 이야기도 마찬가지다. 우영은 어머니가 죽은 뒤 애써 일상생활을 영위해 나가고자 한다. 슬픔을 누르고 무대에 서서 코미디를 할 때, 아무것도 모르는 관객들은 웃지만 사정을 아는 독자들은 그 걸쭉한 코미디가 쓸쓸하게 느껴진다.

‘나는 농담이다’라는 제목은 무슨 뜻일까. 작가는 책의 말미에 ‘작가의 말’ 대신 덧붙인 ‘작가의 농담’을 통해 슬쩍 힌트를 준다. “송우영이 농담 속에서 살아간다면 저는 소설 속에서 살아갈 겁니다. 문자와 문장과 문단 사이에서 죽치고 있을 작정이고, 절대로 나가지 않을 겁니다. … 여기서 살 수 있어서 즐겁습니다.”

고통을 겪어 나가면서도, 그 고통의 무게를 잠시 잊게 하는 농담 같은 이야기들을 통해서 때때로 위로받는 것. 그게 소설이고 삶이다. 그래서 ‘나는 농담이다’의 ‘농담’의 자리에 ‘소설’ 혹은 ‘인생’으로 바꿔 넣어도 좋겠다. ‘나는 소설이다’, ‘나는 인생이다’라고.
 
김지영 기자 kimjy@donga.com
#김중혁#장편 소설#나는 농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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