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툭, 투둑 툭.” 가을 햇살에 영근 밤알이 저 혼자 떨어져 내린다. 밤나무마다 소담스러운 밤송이를 주렁주렁 매달고 있다. 생밤을 하나 집어 보늬를 벗기고 깨물면 풋풋한 향내가 난다. 가을 냄새다.
밤송이가 저절로 벌어지면서 떨어지는 밤톨을 뭐라고 할까. 밤알에 이끌려 알암이라는 이가 많지만 ‘아람’이 옳다. 도토리나 상수리가 익어 저절로 떨어진 것도 아람이다. 보늬는 밤이나 도토리 등의 속껍질을 말한다. ‘버네’(경기 충남), ‘버니’(경북)라고도 한다.
한 톨에 두개의 알이 든 밤은? ‘쪽밤’을 떠올리는 사람이 많겠지만 표준어는 ‘쌍동(雙童)밤’이다. ‘의미가 똑같은 형태가 몇 가지 있을 때 압도적으로 널리 쓰이는 단어만을 표준어로 삼는다’는 표준어 규정에 따른 것이다.
복수표준어를 허용하는 편인 북한은 쪽밤과 쌍동밤은 물론이고 쌍둥밤까지 인정한다. 이 중 쌍둥밤은 우리 말법으로는 허용하기가 곤란한 낱말이다.
1988년 표준어 규정을 개정하면서 ‘막동이’를 ‘막둥이’로, ‘쌍동이’를 ‘쌍둥이’로 바꿨다. 그래서 쌍둥밤도 표준어가 안 될 이유가 없다고 생각할는지 모른다. 그렇지 않다. ‘쌍동이’가 ‘쌍둥이’로 바뀐 것은 한글 어미인 ‘-동이’가 ‘-둥이’로 바뀐 것이니, 한자어 ‘아이 동(童)’자를 한글 ‘둥’자로 바꿀 수 있는 근거는 되지 못한다. 그러니 한 태(胎)에서 나온 두 아들은 쌍둥아들이 아닌 ‘쌍동아들’이 맞다. 굳이 ‘-둥이’를 쓰고 싶다면 ‘쌍둥이 아들’로 쓰면 된다.
배 복숭아 사과 등을 넣고 담근 술도 남북한의 이름이 다르다. 우리는 과실주를, 북한은 과일술을 표준어로 삼고 있다. 많은 사람이 쓰는 과일주는 표준어가 아니다. 과일과 과실은 같은 낱말이고 과실주와 과일술의 뜻도 같은데 달리 쓰는 까닭은 왜일까.
‘멀국’과 ‘말국’도 쪽밤과 비슷한 처지다. 우리는 ‘국물’만 표준어로 인정하고 있다. 그런데 가만, 국물과 멀국은 과연 같은 뜻일까. 멀국과 말국은 콩나물국이나 설렁탕의 국물처럼 ‘멀건 국’, ‘말간 국’이다. 이에 비해 국물은 건더기와 온갖 양념이 다 들어간 불투명한 국이다. 충분한 검토 없이 멀국을 국물의 사투리로 내친 것은 분명히 잘못됐다(이상규 ‘방언의 미학’). 멀국과 말국은 독자적인 언어 세력과 의미를 가진 우리말로 독립시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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