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 두 주일 사이에 벌어진 일이었다. 아흔 살 할머니가 남편이 입원한 다음 날 자신도 암에 걸렸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그 이틀 후 67년간 해로한 남편이 세상을 뜨자 항암 치료를 거부한 채 정처 없는 여행을 선택한 건. 인생의 마지막 순간을 병원이나 요양원에 누워서가 아니라 여행 도중 길 위에서 맞겠다는 것이었다.
미국 미시간 주에서 살았던 노마라는 91세 할머니의 현재 진행형 실화다. 그녀는 지난해 8월 24일 집을 떠나 현재 서부 해안에서 건강하게 여행을 즐기고 있다.
이 특별한 여행은 페이스북의 ‘드라이빙 미스 노마(Driving Miss Norma)’란 계정을 통해 알려져 지구촌 40여만 명의 관심을 끌고 있다. 페친들은 댓글로 할머니의 건강을 기원하며 그 열정을 응원하고 있다. 할머니도 화답하며 매일 소식과 안부를 전한다.
물론 할머니는 혼자가 아니다. 아들 부부가 동행하고 있다. 아들 부부는 벌써 11년째 트레일러하우스(트럭으로 견인하는 집 형태의 트레일러)를 집 삼아 미국과 멕시코를 주유해 온 캠핑 생활자다. 어머니가 생의 마지막을 여행길에서 맞겠다고 하자 자신들의 여행은 접고 어머니의 여행을 돕고 있다.
이들은 어머니를 위해 편한 의자와 별도 침실을 갖춘 대형 모바일홈(버스 형태의 집)부터 마련했다. 그러고는 어머니가 평생토록 가고 싶어 했던 곳을 찾아 전국 곳곳으로 차를 몰고 있다. 그중 하나가 기구비행이었는데 할머니는 그걸 경험한 것은 물론이고, 승마와 시간변경선 통과, 손톱 관리 등 생각지도 못한 일들도 이 여행길에서 체험 중이다.
1년간 이들이 반려견인 푸들과 함께 여행한 거리는 2만1000km(미국 32개 주 75곳). 그 여행은 내내 언론을 통해 알려졌고 그 덕분에 할머니는 가는 곳마다 환영받았다.
한번은 해군 항공모함의 승선 초대를 받기도 했다. 그녀는 152cm 단구에 체중도 46kg인 가냘픈 체격. 더욱이 91세의 암 환자. 항암 치료도 받고 있지 않으니 건강이 걱정될 수밖에 없다. 그런데 놀랍게도 아직은 건강하다.
8월 26일은 여행을 시작한 지 1년이 되던 날. 그날 페북에는 휠체어에 의지하긴 했어도 ‘365’라는 숫자가 있는 초콜릿 케이크 앞에서 맥주잔을 들며 건배를 청하는 할머니 모습이 올라왔다. 그 얼굴엔 병색은커녕 활기가 넘친다.
이 ‘드라이빙 미스 노마’의 자동차 여행에 사람들이 각별한 관심을 보이는 이유. 죽음의 공포에 굴하지 않고 얼마 남지 않은 시간이지만 그걸 가치 있게 만들려고 노력하고 있는 할머니의 용기 덕분이다. 한편으로는 그런 어머니를 응원하고 있는 아들 부부의 ‘아름다운 동행’에 감동해서다.
하지만 이런 미담도 한 의사의 현명한 판단과 조언이 없었다면 실현되지 못했을 것이다. 그는 할머니의 주치의다. 치료를 거부하고 ‘여행을 떠나겠다(I‘ll hit the road)’는 할머니의 결정에 쌍수를 들어 환영한 특별한 의사다. 아들은 어머니의 여행 결심에 즉각 동의했으나 그래도 어머니의 건강 걱정만큼은 떨칠 수 없어 주치의에게 물었다. 너무 무책임한 결정을 내린 게 아니냐고. 그러자 의사는 반색하며 이렇게 말했다. 솔직히 말해 지금 상태에선 수술을 한다 해도 생존을 보장할 수 없다. 더구나 방사선과 화학 치료를 받는 동안엔 극심한 부작용과 통증에 시달리고 이후엔 중환자실이나 요양원, 노인병원에서 죽음을 기다리며 연명해야 할 것이다. 그러니 이런 상황에서라면 나라도 어머니와 같은 결정을 내렸을 것이다. 그러니 여행을 즐기겠다는 어머니의 결정을 존중하는 게 좋겠다고.
할머니는 지금 생애 최고의 순간을 맞이한 듯 보인다. 병상에서 암 치료를 받는 대신 매일 미지의 세상을 여행하고 있으니. 그런 행복감 때문에 죽음에 대한 공포도 잊은 듯하다. 하지만 할머니를 더욱 행복하게 만든 것은 따로 있지 않을까. 생의 마지막 순간을 사랑하는 가족 품에서 맞이할 것이라는 안도감이다. ‘드라이빙 미스 노마’의 여행이 아름다운 건 바로 그 점이라고 나는 믿는다. 그게 사람들이 보내는 박수와 응원의 배경일 것이다.
생의 마지막까지 이어질 동행, 그거야말로 가장 아름다운 동행이다. 모두가 꿈꾸고 또 부러워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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