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기의 음악상담실]용서할 수 없다면…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9월 18일 03시 00분


<21>비치 보이스의 ‘God Only Knows’

김창기 전 동물원 멤버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김창기 전 동물원 멤버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추석 연휴가 끝나갑니다. 오랜만에 반가운, 사랑하는 사람들과 즐거운 시간을 함께하셨나요? 그렇다면 정말 다행입니다. 그 사랑, 기쁨 가슴속에 잘 간직하시고, 삶이 우리를 속일 때, 더 나아가서는 우리를 괴롭힐 때 꺼내 보시며 다시 힘을 얻으세요.

하지만 연휴 동안 꼭 즐겁지만은 않았거나, 몹시 분노하신, 아직도 그 분노를 어쩔 줄 몰라 괴로워하시는 분들도 많을 겁니다. 명절이 끝나면 분노 때문에 정신건강의학과를 찾는 며느리, 시어머니들이 진료 대기실을 가득 채웁니다. 정신건강의학과만 누리는 빤짝 호황입니다.

정신의학자들은 진정한 용서를 거의 믿지 않습니다. 신학자나 철학자들이 아니라 단순하고 고지식한 의사들이니까요. “should be”, “인간이라면 마땅히”라는 말을 거의 믿지 않는거죠.

진정한 용서는 “나도 원수의 입장이었다면 어쩔 수 없이 그렇게 했을 것이다. 나도 부족하고 못난 인간이다”라며 원수의 입장을 진심으로 이해할 때 가능합니다. 대부분의 경우 그렇지 않죠? “어떻게 인간이 그럴 수가 있어? 나는 절대 그렇지 않아!”이니까요. 하지만 내가 그 입장이 되었을 때 어떻게 할지는 장담할 수 없습니다.

나는 원수가 했던 비인간적인 행동을 하지 않겠지만, 그래도 서로 더 좋고 발전된 삶을 살기 위해, 나아가서는 더 좋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용서할 수 있습니다. 매우 성숙한 인간들만이 내릴 수 있는 훌륭한 결정입니다. 저는 그러지 못할 것입니다. 그래서 저를 비롯한 대부분의 보통 사람들에게 용서는 영겁 후의 일입니다.

용서할 수 없다면 복수하거나, 아예 그 원수를 제거하거나, 나의 삶에서 제거해야 합니다. 가장 복잡하지 않은 해결책은 안 보고 사는 것인데, 안타깝게도 우리에게 가장 큰 피해와 상처를 주는 사람은 우리의 가족, 혹은 가족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입니다. 안 보고 살 수 없는 사람들이죠.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요?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함께 고민하다 보면 결국 결론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게 더 소중한 것을 지키기 위해 화해하거나 조율하거나 최소한 인내해야 하겠죠?”이곤 합니다. 대부분의 경우 조율과 인내죠.

용서와 화해가 불가능하다면, 정치와 외교를 시작해야 합니다. 착하지 않으니까, 착한 척하지 말고 여우가 되어야 합니다. 우군들을 모아 세력을 키우고, 원수가 나에게 해를 덜 끼치게 설득을 해야 하는 것이죠. 가만히 있으면 똑같은 일이 또 벌어질 것이니까요. 내게 더 소중한 것을 지키기 위한 조율입니다. 그렇게 소중하지 않다면 안 보고 살면 됩니다.

비치 보이스의 천재 작곡가 브라이언 윌슨은 이렇게 진술합니다. “난 늘 당신을 사랑하지 않을 수도 있어. 하지만 (저 하늘에 별이 있는 것처럼) 내가 당신 곁에 있으리란 것은 약속할 수 있어. 당신이 없는 세상은 의미가 없으니까. (당신이 없다면 내가 어떻게 될지 오직 신만이 아시니까!)” 가장 중요한 것은 당신, 우리 아이들, 애착이죠. 그 대상들을 위해 조율하고 인내하는 것이죠.

결론. 설교는 짧게. 반대로 내가 누군가의 원수는 아닌지 생각해 봐야 합니다. 그럴 가능성이 매우 높으니까요. 말을 조심해야 합니다. 입장 바꿔 생각해 본 후, 최소한 세 번은 참은 후 말을 해야 합니다.

김창기 전 동물원 멤버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비치 보이스#god only kno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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