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향기]뜨겁게 살다 무너진 건달, 그가 본 생생한 폭력세상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9월 18일 03시 00분


◇뜨거운 피/김언수 지음/596쪽·1만6500원·문학동네

이 소설을 뭐라고 해야 할까. 그야말로 장르소설인데, 짠하다. 그간 한국 영화에서 숱하게 만났던 조직폭력배 이야기가 소설로 왔다. 조폭이 되고 싶은 소년의 성장통이나 퇴물 조폭의 쓸쓸함 같은, 문학과 조폭을 적절히 섞은 게 아니라 ‘진짜 조폭 이야기’다. 동아일보 신춘문예 등단, 문학동네소설상 수상 등 순문학의 이력을 갖춘 작가가 선보이는 세 번째 장편소설이다.

주인공은 마흔 살의 전과 4범 건달 희수다. 그는 부산 변두리 구암에 있는 만리장호텔의 지배인이고, 구암 암흑가의 보스인 손영감의 오른팔이다. 중년으로 접어든 희수는 ‘죽거나 칼을 맞고 병신이 되기 일쑤인’ 건달의 세계가 지긋지긋하다. 그는 모자원 시절부터 연모해온 창녀 출신 인숙과 그의 아들 아미와 가정을 꾸리려고 한다. 20년을 함께해 온 손영감을 떠나 새로운 사업을 하고자 한다.

희수는 신경을 거스르는 깡패를 단번에 화분으로 내리쳐 머리를 깨부수는 전형적인 건달이지만, 내면은 침착하고 침울하며 인생에 대해 다소 냉소적이다. 자신이 몸담은 건달의 세계에 차가운 태도를 보이지만 희수의 눈을 통해 전달되는 건달의 세계는 뜨겁게 끓어오르는 삶이다. 작가는 소설에서 ‘끈적거리고 뜨겁게 달라붙는 것들을 사랑할 엄두가 나지 않을 때까지’(586쪽) 희수를 몰아붙인다. 희수가 꿈꾸는 소박하고 다감한 삶은 애당초 불가능하다는 걸 책을 읽는 독자들도 이내 짐작하게 된다. 작가는 희수가 잠시나마 가졌던 단란한 가정도 혹독하게 무너뜨리고, 희수로 하여금 모든 것을 잃도록 내몬다. 악행을 저지르는 건달을 ‘나쁜 놈’으로 몰아붙일 수 없는 짠함이 여기에 있다. 뜨겁게 살다가 뜨거운 것에 엉겨서 종국엔 무너지는 삶, 선악으로 평가할 수 없는 그 뜨거움이 인생이 아니냐고 작가는 말한다. “사람들은 이제 뜨겁지 않다. 뜨거운 것들은 모두 미숙하고 촌스럽고 어른스럽지 못하다는 죄목으로 촌충처럼 사라져 버렸다. 그럴 때마다 나는 구암의 그 지리멸렬한 삶이 그리워진다. 구암의 시절엔 짜증나고, 애증하고, 발끈해서 술판을 뒤집었지만 적어도 이토록 외롭지는 않았다.”

김지영 기자 kimjy@donga.com

#뜨거운 피#김언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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