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에서 활동하고 있는 중국 출신의 세계적인 조각가 왕두(王度·59)는 이달 초 광주 아시아문화의전당에 설치된 7m 높이의 자신의 조각품 ‘빅토리(Victory)’를 꼼꼼히 살폈다. 지난해 설치된 뒤 시민들의 촬영 명소가 된 광주 아시아문화의전당의 대표작이다. 왕두는 “뼈만 남은 손가락은 광주 민주화운동에 참여했던 시민들의 희생과 상처, 승리를 상징한다”고 말했다.
왕두는 올해 광주 비엔날레 특별전에 초청돼 20년 지기인 한홍수 화백(57·재불현대화가협회 소나무회 대표)과 함께 최근 한국을 방문했다.
두 사람은 1992년부터 파리의 노트르담 성당, 에펠탑 거리에서 초상화 화가로 10년간 일하면서 만나 우정을 쌓았다. 늘 경찰에 쫓겨다니는 가난한 이방인 화가였던 두 사람은 최근 본보와의 인터뷰에서 “거리가 우리의 아틀리에(작업실)였다”고 회상했다. 이후 유럽과 미국에서 활발한 활동을 해 온 두 사람은 지난해 파리 유네스코 본부에서 열린 유네스코 창립 70주년 특별전 ‘제3의 현실’에 함께 초청되기도 했다.
중국에서 체제 비판적인 작품 활동을 해왔던 왕두는 1989년 6월 중국 톈안먼 사태 당시 9개월간 감옥에 갇혔다가 국제 인권단체의 도움으로 프랑스로 망명했다. 1999년 베니스 비엔날레에서 열린 해외 망명 중국작가 21명의 ‘후(後)89 예술’ 특별전이 세계적으로 주목받으면서 중국 현대미술을 대표하는 1세대 작가로 떠올랐다.
이번 전시회에서 두 사람은 북한 핵실험과 미사일 위기로 고조된 동아시아의 상황에서 폭력과 죽음의 문화를 생명과 창조의 이미지로 극복하는 예술작품을 선보였다. 왕두는 전시장 한쪽에 신문지로 만든 미사일을 설치했고, 반대편 벽면에는 여성의 신체 뒷모습이 그려진 한 화백의 에로틱한 유화 작품이 전시됐다.
왕두의 ‘신문지 미사일’은 1999년 코소보 전쟁 당시 스위스 바젤 아트페어에 출품된 이후로 꾸준히 만들어 온 시리즈 작품. 왕두는 “코소보 전쟁 당시 르몽드, 르피가로, 리베라시옹 등 프랑스의 신문들이 전쟁의 이미지를 끊임없이 확대재생산시키는 것을 보고 ‘미사일보다 더 공격적인 미디어’라는 의미에서 만든 작품”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이걸 보고 북한 핵과 미사일, 이슬람국가(IS)의 테러 등을 느끼는 것은 관람객의 자유”라고 말했다.
한 화백은 “심리학자 프로이트는 1931∼32년 아인슈타인과 주고받은 편지에서 전쟁과 폭력, 테러 등을 억제하기 위해선 삶의 순수하고 창조적인 에로틱한 욕망을 더 키워야 한다는 해법을 내놓았다”며 “왕두의 미사일이 ‘타나토스’(죽음의 본능)를 상징한다면 내 작품 ‘기관 없는 신체’는 에로틱한 욕망을 상징한다”고 말했다. 그는 “지난해 영국의 설치미술가 애니시 커푸어가 베르사유 궁전에 여성의 성기를 은유한 작품을 전시해 논란이 벌어진 것도 테러와 전쟁의 시대에 죽음의 문화를 에로틱한 생명의 창조적 에너지로 극복하려는 예술적 노력”이라고 덧붙였다.
김기덕 감독과도 친분이 있는 왕두는 한국의 대중문화에도 관심이 크다. 그는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 논란으로 한중 갈등이 빚어지고 있는 데 대해 “일시적인 현상”이라고 말했다. 그는 “한때 일본과의 정치적 문제가 있을 때 일본산 차량을 불태우고, 대대적인 반일시위를 벌였지만 얼마 가지 않았다”며 “중국의 공산주의 교육과 집단적 애국주의 때문에 벌어지는 사회적 현상이지만, 개개인은 그런 감정이 없어 우려할 일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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