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3년 3월 28일자 동아일보 기사의 첫머리다. ‘안전 사라지는 조선 지진, 앞으로 활동 개시!’라는 제목이다. 조선반도가 무진(無震) 지대가 아님을 경고하는 내용이다.
앞서 3월 3일 새벽 도쿄를 포함한 일본 간토(關東) 지방과 동북 지방에도 초강진이 엄습하여 그 충격파가 아직 완전히 사라지지 않은 때였다. 후쿠시마(福島) 앞바다가 진앙인 규모 8.1의 초강력 지진은 쓰나미까지 미쳐 가옥 1만 채 이상이 파괴되고 사망자 1500명 이상과 비슷한 수의 실종자를 냈다. 지진 규모는 10년 전의 간토 대지진보다 컸고 충격 범위도 더 넓었다. 당일 서울에서는 신문 호외가 나왔다.
그리고 일주일 뒤인 3월 10일 밤 태평양 저편 로스앤젤레스에서도 지진이 일어나 100명 이상이 사망했다는 소식이 다시 전해졌다. 조선은 과연 지진에 안전한가. 3월 28일자 신문은 부산측후소장이 조선의 지하운동을 조사한 결과를 인용해 다음과 같이 전했다.
‘2천 년 전부터 기록에 남아 있는 조선의 강진은 750회나 된다. 이 중 약 절반인 350∼360회는 상당히 큰 지진이었는데, 그중 특히 두드러진 것이 48회였다.’
주목할 만한 지진 중 최근의 것으로는 당시로부터 206년 전인 1727년 6월 함경도 함흥 일대의 일곱 고을에서 발생해 가옥과 성루가 대거 부서지고 무너져 내렸다고 기록된 것이라 했다. 영조 연간의 그 지진 이후 200년 이상 큰 지진이 뜸한 채로 지내 왔다는 것.
조선 기상을 연구하는 일본 학자들은 이미 10년 전부터 조선에 큰 지진이 올 때가 되었다고 경고해 왔다. 소소한 지진의 발생 빈도 추이를 보아도 조선의 지진이 활동기로 접어든 것 같다는 분석이다. 신문은 이렇게 요약한다.
‘통계상으로 보면 부산 근방의 경주 울산 일대의 지진 움직임이 많아 제일 위험한 곳이라 한다.’
그로부터 4개월이 지나지 않아 서울에 지진 소식이 있었다.
‘새벽 1시 20분 경성 부근에 지진이 있어 진동음에 잠자다 놀라 눈을 뜬 사람까지 있었다. 경성측후소의 지진계에 감지된 바에 따르면 발진 시각은 13일 오전 1시 18분 32초 9, 진앙거리는 경성으로부터 약 15킬로. 최대 진폭 62미크론이며. 총진동시간은 약 50초였다.’ (1933년 7월 14일자)
8월 하순부터 9월 초 사이 전남 일원에는 땅이 꺼지고 대홍수가 나리라는 괴소문이 퍼져 인심이 동요하고 일부는 피난 짐을 싸는 소동이 있었다. 그리고 11월 평양에서 지진이 감지되었다.
‘평양측후소의 발표에 의하면 총진동시간은 44초. 평양을 중심으로 30여 리에 미쳤는데. 인체가 느낄 만한 지진은 평양측후소 창설 이래로 아홉 번째라고 한다.’(1933년 11월 23일자)
그 후 80여 년이 더 지나 근대식 관측 이래 최고 강도의 지진이 천년고도 경주의 지각을 통해 찾아들었다. 이웃 나라에서는 일상사로 받아들이는 규모의 진동에 온 나라가 후들거린다. 그러잖아도 여기저기 싱크홀이 생길 정도로 허약해지는 한국의 지반인데 북한에서는 인공 지진까지 일으켜 평지풍파를 부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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