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미니의 프란체스카(Francesca da Rimini)는 단테(사진)가 쓴 ‘신곡’의 지옥편에 등장하는 여성입니다. 못생긴 남자에게 시집가지만 잘생긴 시동생에게 반해 사랑에 빠지죠. 이 사실을 남편이 알게 되고, 사랑하는 남녀는 죽임을 당합니다. 이 이야기에 영감을 받은 차이콥스키가 교향시 ‘리미니의 프란체스카’를 썼고, 차이콥스키를 경모한 후배 작곡가 라흐마니노프는 같은 제목의 오페라를 작곡했습니다.
그런데 저는 이 프란체스카를 생각할 때마다 차이콥스키나 라흐마니노프에 앞서 오페라 작곡가 자코모 푸치니를 떠올리게 됩니다. 푸치니가 이 소재로 작품을 쓰지는 않았습니다. 그런데도 그를 생각하는 데는 이유가 있습니다. 지옥에 간 프란체스카는 눈물을 흘리면서 “불행한 지금, 행복했던 과거를 회상하는 것보다 슬픈 일은 없습니다”라고 뇌까립니다.
푸치니는 이 명제를 가장 충실하게 실천한 단테의 후배 예술가로 일컬어집니다. 단테보다 600년 뒤에 같은 고장(토스카나 주)에서 태어난 그는 수많은 오페라에서 ‘프란체스카 원칙’을 실천했습니다. 첫 오페라인 ‘빌리’, 출세작 ‘마농 레스코’, 대성공작인 ‘라보엠’ ‘나비부인’ 등이 다 비슷합니다.
첫 장면에서는 연인들이 행복한 시간을 갖지만, 마지막 장면에서 재회한 두 사람은 비극적인 운명을 앞두고 있습니다. 죽어가거나, 벌을 받거나, 이별할 수밖에 없는 슬픈 상황 속에서 주인공들은 행복했던 과거를 떠올립니다. 동시에 푸치니는 첫 장면에서 선보였던 아름다운 멜로디를 수없이 흘려보내 관객의 눈물샘을 자극합니다. 이 때문에 푸치니의 오페라들이 ‘단테적이다’라는 얘기를 듣는 것입니다.
한편 줄거리 면에서 리미니의 프란체스카는 바그너 오페라 ‘트리스탄과 이졸데’, 마테를링크의 희곡 ‘펠레아스와 멜리장드’ 등과도 공통된 구조를 갖습니다. 정략 결혼한 신부가 더 낮은 권력을 가진 미남을 사랑했다가 죽는 스토리죠. ‘펠레아스와 멜리장드’는 포레, 드뷔시, 시벨리우스, 쇤베르크가 각각 음악으로 만들었다는 얘기도 이 코너에서 소개한 바 있습니다.
요엘 레비가 지휘하는 KBS교향악단은 30일 정기연주회에서 차이콥스키의 ‘프란체스카 다 리미니’를 첫 곡으로 연주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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