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후기 ‘경영형 부농’은 존재하지 않았다”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9월 21일 03시 00분


박노욱 박사가 최근 출간한 ‘조선후기 양안 연구…’서 밝혀
학계 정설 뒤집어 논란 예상

조선 후기 양안(量案·토지대장)을 재검토한 결과 당시 광작(廣作)을 통해 자본주의적 농업 경영을 지향한 이른바 ‘경영형 부농(富農)’의 등장은 사실이 아니라는 연구가 나왔다.

10여 년간 양안을 연구해 온 박노욱 박사는 최근 책 ‘조선후기 양안 연구에 대한 비판적 검토’(경인문화사)에서 “기존 연구는 양안에 나오는 ‘기주(起主)’와 ‘시작(時作)’ 항목을 각각 지주와 소작인으로 봤지만 연구 결과 둘 모두 해당 전답의 경작자를 뜻한다”며 “이를 바탕으로 양안을 다시 분석하면 당시 대규모 소작 경영인(경영형 부농)의 존재를 발견하기 어렵다”고 주장했다.

이 같은 주장은 학계의 일반적인 해석과는 사뭇 다른 것이어서 논란이 예상된다. 책은 ‘기주’ 항목에 나오는 인명은 해당 전답을 이전에 경작했던 소작인을 뜻한다고 했다. 박 박사는 “기존처럼 ‘기주’를 토지 소유자로 보고 양안을 분석하면 자신 소유 토지를 남에게 경작하도록 하고, 자신은 바로 옆 필지의 남의 토지를 소작하는 관행이 있었다는 결과가 나온다”며 “이는 상식으로 이해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책은 또 양안에서 ‘주(主)’와 ‘시작’의 인명이 같은 경우가 잦은데, 주를 토지 소유자로 보면 자신의 전답을 경작하는 지주를 소작자로 칭하는 것이어서 모순이라고 주장했다. 이런 기록은 이전 경작자(주)와 현 경작자(시작)가 동일인이라는 의미라는 것이다. 박 박사는 “또 양안의 ‘동인(同人)’이라는 표현은 바로 앞에 기록된 사람이 아니라 동일한 성격의 앞 칸, 즉 앞의 기주나 앞의 시작을 지칭한 것”이라며 “이를 바탕으로 양안을 다시 분석하면 경작 규모가 커도 십여 마지기 정도에 불과하고 대규모 경작자는 거의 없었다”고 주장했다.

경영형 부농설은 1960, 70년대 김용섭 전 연세대 교수 등이 전라도 고부군 용동궁 전답 양안 등을 분석해 제창한 학설이다. 조선 후기 임노동자를 고용한 광작(廣作)이 이뤄졌고 시장 출하를 목적으로 상업 작물이 대규모로 재배되는 등 자본주의의 싹이 텄다는 ‘자본주의 맹아론’을 뒷받침한다. 이후 많은 비판에도 불구하고 그 개념이 고교 한국사 교과서에도 여전히 담겨 있는 통설이다.

책은 양안의 작성 목적이 토지 소유주를 밝히는 것이 아니라 세금을 걷는 데 있다고 주장했다. 정구복 한국학중앙연구원 명예교수는 최근 한국고문서학회 연구발표회에서 책을 논평하고 “책에 따르면 조선 후기 농촌 사회구조를 설명하는 정설로 거의 수용된 경영형 부농설이 통계 처리가 완전히 잘못돼 나온 것이라는 결론에 이른다”고 말했다.
 
조종엽 기자 jjj@donga.com
#경영형 부농#조선후기#박노욱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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