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수라’에는 선한 인물이 없다. 강력계 형사와 시장, 특수부 검사 등 등장인물들이 하나같이 악질 중의 악질로 그려진다. 영화에서 “나쁜 짓 하지 마라”며 지옥 같은 싸움을 말리는 인물은 비리 형사 한도경(정우성)의 아내로 생의 막바지에 선 말기 암 환자 승미뿐이다.
악덕 시장 박성배(황정민)는 자신을 지키기 위해서라면 타인의 목숨조차 우습게 여긴다. 그의 뒤는 아내 병원비를 핑계로 돈 되는 건 뭐든 하는 형사 한도경이 봐준다. 독종검사 김차인(곽도원)과 수사관 도창학(정만식)은 그런 도경을 갖은 수단으로 협박해 박성배를 무너뜨리려 한다. 두 악질 사이에 낀 도경이 자신을 친형처럼 따르는 후배 형사 문선모(주지훈)를 박성배의 수하로 들여보내면서 본격적인 지옥도가 펼쳐진다.
김성수 감독은 ‘비트’(1997년) ‘태양은 없다’(1998년) ‘무사’(2001년)에 이어 네 번째로 정우성과 만나 남성적 색채 짙은 영화를 내놨다. 감독은 “열심히 나쁜 짓을 했지만 큰 보상도 못 받고 난폭한 두목 밑에서 구박받다가 위기 상황이 되면 제일 먼저 나가떨어지는 시시한 악당을 주인공으로 삼고 싶었다”며 “일반 액션 영화의 선악 구도가 아닌 온전히 악인만 등장하는 폭력의 생태계를 만들려고 했다”고 설명한다.
‘폭력의 생태계’를 보여주려는 의도에는 충실했지만 그 이상의 메시지는 흐릿하다. 러닝타임 내내 펼쳐지는 잔인한 장면은 눈만 자극하고 끝날 뿐이다. 최근 개봉했던 청소년관람불가 등급의 누아르 ‘내부자들’(2015년)보다는 사회적 메시지가 적고, 제작자가 같아 개봉 전부터 비교됐던 ‘신세계’(2013년)보다는 인물 간의 드라마가 부족하다. 특히 영화 초반부 선하게 그려지던 후배 형사 문선모가 악에 물들어가는 과정이나 ‘친형제 사이’라던 한도경과 문선모의 관계 변화는 다소 갑작스럽게 전개된다.
배우들의 연기는 눈여겨볼 만하다. ‘비트’의 오토바이 질주 장면 속 꽃미남 배우 정우성은 매서운 눈빛으로 유리컵을 씹어뱉는 거친 남자로 거듭났다. ‘비트’ 이후 그가 지나온 시간이 읽히는 영화다. ‘범죄와의 전쟁’, ‘변호인’에서 악질 검사로 활약한 배우 곽도원의 전매특허 검사 연기나 연기 인생 중 최고 악질을 연기한 배우 황정민의 활약을 지켜보는 맛은 있다. ★★☆(별 다섯 개 만점) 28일 개봉. 청소년관람불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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