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원의 옛글에 비추다]겉과 속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9월 2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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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예에 이익이 뒤따르지 않는 경우에도

기꺼이 제 몸을 돌보지 않고 명예를 따를 수 있겠는가

及其名之無利 亦肯忘其身以殉乎哉

(급기명지무리 역긍망기신이순호재)

―최규서 ‘간재집(艮齋集)’


 이익을 좇는 것은 일반 사람들의 보편적인 모습이다. 직장 생활을 통해 급여를 받는다거나 장사를 하여 돈을 버는 것도 모두 이익을 좇는 행위이다. 이러한 일을 하는 것에 대해 우리는 아무도 비난하지 않는다. 그러나 보다 나은 삶을 위하여 이익을 추구하는 것인데 간혹 이익을 탐하다 목숨까지 내놓는 경우가 있으니, 이는 어리석은 행동이라 하겠다.

 보통의 사람들과는 달리 열사(烈士)는 뜻을 이루기 위하여 목숨을 바친다. 이름을 위한 것은 아니지만 결과적으로 죽음으로 명예를 얻게 된다. 이익과 명예는 원래 이렇게 서로 가까울 수 없는 것이다. 조선 중기의 학자 최규서는 당시의 세태를 개탄하였다.

 “괴이하게도 지금의 사람들은 이익을 이익으로 여길 뿐만이 아니라 명예도 이익으로 여긴다. 겉으로는 헛된 명성을 내세우면서 속으로는 실질적인 이익을 따져, 밤낮으로 정신없이 이익에 골몰하여 혹시라도 이름이 드러나지 않아 이익을 맘껏 챙기지 못할까를 근심한다.”

 분명 300여 년 전의 말인데 전혀 낯설지가 않다. 지금의 많은 사람들은 명예를 명분으로 내세운다. 사심은 없다 말을 한다. 공직에 나서는 사람도 그렇게 말을 하고, 사회사업을 하는 사람도 그렇게 말을 하고, 소위 학문에 종사한다는 사람도 그렇게 말을 한다. 어느 정도의 이름을 얻은 사람 중에 이익을 먼저 말하는 사람은 보지 못한 것 같다. 그런데 가만 살펴보면 그 사람들이 경제적으로 가장 잘살고 있는 듯하다. 이익을 얻을 만큼 얻은 뒤에 이름을 얻은 것인지, 그 이름을 통해 많은 이익을 얻게 된 것인지.

 위의 말처럼 이익이 전혀 뒤따르지 않는 명예에도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기를 쓰고 나서려고 할까. 선뜻 대답할 수 없다면 지금의 많은 사람들은 겉으로는 명예를 위한 것이라고 하면서도 실제로는 이익을 위해 몸을 던지고 있는 것이다.

 최규서(崔奎瑞·1650∼1735)의 본관은 해주(海州), 호는 간재(艮齋)이다. 문과에 급제하여 영의정의 지위에까지 이르렀다. 당쟁의 시기에 소론의 영수가 되었다.
 
이정원 한국고전번역원 책임연구원
#최규서#간재집#이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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