쫙 펼쳐진 붉은 벽돌의 외벽, 창문의 질서 정연함과 거기 숨겨진 리듬감, 고풍스러움과 현대적 분위기의 절묘한 조화…. 부산 도심 한복판 부민동에 있는 동아대 석당박물관은 전국의 박물관 가운데 건축적으로 가장 매력적인 공간의 하나다.
애초 이 건물은 1925년 경남도청이 진주에서 부산으로 옮길 때 도청 건물로 지어졌다. 이어 6·25전쟁의 와중에 대한민국 임시수도 정부청사로 사용되었다. 전쟁 이후 다시 경남도청으로 돌아갔고 경남도청이 창원으로 옮겨 간 뒤엔 부산지방법원, 부산지방검찰청으로 이용되었다. 그러곤 2002년 동아대가 인수해 박물관으로 사용하고 있다.
이 건물의 90여 년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시기는 6·25전쟁기가 아닐 수 없다. 전쟁 발발 약 두 달 후인 1950년 8월부터 1953년 8월까지 만 3년 동안 이 건물은 대한민국 정부의 임시청사였기 때문이다. 예로부터 임금이 난리를 피해 안전한 곳으로 옮기는 것을 몽진(蒙塵)이라고 했다. 몽진은 머리에 먼지를 뒤집어쓴다는 의미다. 당시 공식적인 천도(遷都)는 아니었지만, 대통령이 서울을 떠났다는 것 자체만으로 치욕이 아닐 수 없었다.
몽진 3년, 가난하고 힘든 시절이었지만 부산의 역사에서는 매우 중요했다. 대통령과 관료, 정치인들이 모두 부산에 모였다. 대학들도 부산으로 옮겨 와 공부를 했다. 피란민도 늘어나 40만 명이었던 부산 인구는 100만 명에 달했다. 시인 소설가 화가들은 전란의 와중에도 부산에서 예술혼을 불태웠다.
전쟁은 계속되었지만 부산은 대한민국의 중심이 된 것이다. 그 부산의 중심은 지금의 동아대 박물관 건물이었다. 현재 박물관 근처엔 임시수도 시절 대통령 관저로 사용했던 옛 경남도지사 관사 건물도 있고 영화로 더욱 유명해진 국제시장도 있다. 박물관 옆에는 부산지역에서 1968년까지 운행되었던 전차도 전시되어 있다. 이 전차는 우리나라에 남아있는 전차 3대 가운데 하나다. 임시수도 정부청사 건물은 외관뿐만 아니라 내부도 매력적이다. 건물을 복원하며 내부 곳곳엔 옛 흔적을 살려 놓은 점도 좋은 볼거리다.
30일과 10월 1일 동아대 박물관을 중심으로 ‘부산야행’이 열린다. 부산 도심에 산재한 근대의 흔적을 둘러보는 프로그램이다. 임시수도 정부청사, 동아대 박물관을 통해 부산 임시수도 시절 3년의 역사를 만날 수 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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