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이 좋아하는 여행지 동남아는 거리음식의 천국이다. 그중 싱가포르, 홍콩, 방콕은 비슷한 듯 하면서도 저마다 고유한 음식문화를 가진 관광명소다. 국수를 중심으로 세 도시의 거리음식에 도전했다. 첫 여행지는 싱가포르. 현재 6000여개의 노점식당이 영업하고 있다. 7월 발표한 미슐랭 가이드 싱가포르판에선 3스타 한 곳을 포함해 2스타 6곳, 1스타 18곳이 선정됐다. 미슐랭 가이드 역사상 최초로 노점식당 2곳이 1스타로 선정돼 화제가 됐다. 살아있는 재료의 식감…평양냉면의 풍미
● 싱가포르 비빔국수의 매력. ‘힐 스트리트 타이화 포크 누들’
1930년대 오픈 해 현 주인 탕차이셍(70) 씨가 대를 이어 영업하는 힐 스트리트 타이화 포크 누들(Hill Street Tai Hwa Pork Noodle)로 가는 길은 어렵지 않다. 지하철 라벤더역에서 내려 5분 정도 걸으면 된다. 토요일 오전 9시40분에 도착했을 때 이미 줄이 7∼8m 정도 서 있었다. 생각보다 길지 않아‘대략 30∼40분이면 되겠다’고 여유를 가졌지만 큰 착각이었다.
이곳은 손님이 주문하면 그때부터 국수를 삶고 각종 고명을 얹은 뒤 소스를 배합해 꽤 시간이 걸린다. 포장주문도 가능해 국수 6∼7개를 함께 주문하는 경우가 많다. 한 명 줄어드는데 최소 10∼15분 이상 걸렸다. 메뉴는 포크누들을 포함해 딱 3개. 가격은 국수 양에 따라 5, 6, 8, 10 싱가포르 달러, 우리 돈으로 4000원에서 8000원대다.
6달러가 레귤러 사이즈로 가장 많이 찾는데 우리 돈 4828원이다.
마침내 음식을 받았다. 시계를 보니 11시52분, 2시간10분이 넘게 걸렸다. 영어로는 포크누들이지만 정확히는 싱가포르식 비빔국수 박초미(Bac Chor Mee)다. 돼지고기가 편으로 얇게 썬 것과 다진 것 두 가지, 완탕 비슷한 작은 만두, 생선튀김 등이 고명으로 올라가 있다. 소스는 매운맛과 새콤한 맛이 함께 느껴지는데 우리네 비빔국수보다 가벼운 느낌이다.
첫 맛을 보면 명성에 비해 맛이 평범하다 싶어 살짝 허탈해질 수 있다.
하지만 잘 비벼 은근히 깊은 맛인 어묵국과 함께 먹으면 재료마다 식감이 잘 살아있고, 노점식당 특유의 조미료 맛도 없다. 자극적이지 않으면서 여운이 있는 맛이 평양냉면의 심심한 풍미마저 떠올리게 한다. 한 그릇을 다 먹을 때면 꽤 만족감을 느낄 수 있다. 소스맛 일품인 닭고기…국수와 절묘한 조화
● 1600원에 즐기는 미슐랭 스타 음식, ‘홍콩 소야소스 치킨 라이스 앤 누들’
홍콩 소야 치킨 라이스 앤 누들(Hong Kong Soya Sauce Chicken Rice & Noodle)은 관광객이 많이 찾는 차이나타운의 맥스웰로드 호커센터에 있다. 상가 2층 호커센터에 많은 음식점이 있지만 엄청나게 긴 줄이 늘어선 집이다. 메뉴는‘치킨 라이스’와 ‘치킨 누들’. 간장을 베이스로 한 소스에 닭고기를 장시간 졸인 뒤 밥이나 국수 위에 길게 잘라 얹어 주는 동남아 거리음식이다. 일품요리격인 치킨과 공심채 볶음을 제외하면 모든 메뉴가 3싱가포르 달러(약 2414원)를 넘지 않는다. 가장 싼 것은 2싱가포르 달러(1609원). 미슐랭 1스타 음식을 2000원 안팎으로 즐길 수 있는 셈이다.
이곳도 오후 1시20분에 줄을 서 2시40분에야 주문을 할 수 있었다. 점심시간은 피하는 것이 필수다. 오너셰프 찬한멩 씨가 주재료인 닭고기 준비부터 현장 조리까지 혼자서 한다. 밥과 국수를 모두 주문했는데, 비주얼은 무척 소박하다. 역시 첫 맛이 자극적이지 않다. 기본을 잘 지킨 음식이라고 할까. 하지만 적절하다는 표현을 넘어 절묘하게 간이 맞춰져 있다. 고기 속까지 깊게 배인 소스 맛이 일품인 닭고기와 밥, 국수의 어우러짐도 꽤 좋았다. 파인다이닝의 고급 정찬처럼 화려하고 복잡한 맛은 아니지만, 정직하게 다가오는 맛과 식감이 의외로 긴 여운을 주는 음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