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형모의 아이러브 스테이지] 청아한 ‘연아’의 목소리에 빠져든다

  • 스포츠동아
  • 입력 2016년 9월 30일 05시 45분


뮤지컬 ‘더맨인더홀’에서 여주인공 연아 역을 맡아 열연하고 있는 이은율. 성악가의 꿈을 안고 독일 유학을 떠났다가 돌아와 뮤지컬 배우로 데뷔한 이은율은 청아한 목소리와 품위있는 연기로 관객을 사로잡고 있다.사진제공|파파프로덕션
뮤지컬 ‘더맨인더홀’에서 여주인공 연아 역을 맡아 열연하고 있는 이은율. 성악가의 꿈을 안고 독일 유학을 떠났다가 돌아와 뮤지컬 배우로 데뷔한 이은율은 청아한 목소리와 품위있는 연기로 관객을 사로잡고 있다.사진제공|파파프로덕션
■ 뮤지컬 ‘더맨인더홀’ 이은율

성대결절로 성악가 꿈 접고 배우로
홍일점 역할…품격있는 연기에 매료


뮤지컬 ‘더맨인더홀(The Man in the Hole)’은 꽤 까칠한 작품이다. 어둡고 음울하지만 환상적이다. 국내 공연계의 ‘간달프’로 불리는 이현규가 대본을 쓰고 연출을 맡았다. 음악은 작곡가 민찬홍의 솜씨다.

연인인 하루와 연아는 한 밤중에 집 앞 놀이터에서 강도를 만나 잔인하게 칼에 찔린 채 맨홀 속에 버려진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끔찍한 고통 속에서 눈을 뜬 하루는 환영과 환청에 시달리게 되고, 급기야 이 작품의 주요한 캐릭터인 ‘늑대’와 마주하게 된다.

이현규 작가는 “한 평범한 미생같은 남자에게 벌어진 비극을 아름답고 서정적으로 푼 이야기”라고 말하고 있지만, 글쎄다. 이렇게 간단히 한 줄로 표현될 만한 작품이 아니라는 사실은 작가가 가장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이 작품의 밑바탕에는 지그문트 프로이트의 이론이 묵직하게 깔려 있다.

이은율(38)은 ‘더맨인더홀’에서 유일한 여성 캐릭터인 연아를 맡았다. ‘황태자 루돌프’, ‘쌍화별곡’, ‘천국의 눈물’ 등 대극장 무대를 통해 익숙하지만 ‘달콤한 인생’, ‘페이스오프’, ‘루나틱’과 같은 소극장 작품에도 많이 출연했다.

하루와 늑대라는, 카리스마가 철철 넘치는 남자배역들 사이에서 이은율은 ‘연아’라는 청초한 꽃 한 송이를 아름답게 피웠다.

이은율은 원래 신학대학에서 성악을 전공한 소프라노였다. 대학 졸업 후 전문싱어팀에서 일하며 가요, 팝부터 뮤지컬, 오페라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장르의 노래를 섭렵했다.

“그러다가 덜컥 성대결절이 왔어요. 6개월 동안 노래를 한 소절도 부르지 못하던 암울한 시기였죠.”

성악가로서의 꿈을 버리지 않고 있던 이은율은 성대결절을 고치기 위해 독일로 날아갔다. 뒤셀도르프에서 공부하던 중 우연히 뮤지컬 공연을 알리는 포스터를 보았다. 뮤지컬이라면 싱어팀에서 이미 충분히 ‘맛’을 봤던 레퍼토리가 아닌가. 집을 싸 한국으로 돌아온 이은율은 무작정 ‘명성황후’ 오디션에 원서를 넣었다. 지금 생각하면 얼굴이 뜨거워질 정도로, 아무 것도 모르고 그냥 나갔다. 춤을 추라고 하는데 어쩔 줄을 몰라 그냥 우두커니 서 있었단다. “그런데 덜컥 붙었어요”. 이은율이 쑥스러운 얼굴로 웃었다.

이후 크로스오버 재즈밴드의 보컬리스트와 가수(개인 싱글을 두 번이나 냈다) 활동을 병행하며 차곡차곡 배우로서의 캐리어를 쌓았다.

춤치 이은율도 옛말이다. ‘황태자 루돌프’에서 보여 준 ‘전쟁 같은 탱고’ 장면은 두고두고 회자됐다. 이번 ‘더맨인더홀’에서도 이은율의 춤 실력을 살짝이나마 감상할 수 있다.

‘더맨인더홀’은 배우들에게도 쉽지 않은 작품이다. 창작물인데다 초연이다 보니 개막하고도 바뀌는 부분이 적지 않았단다. 이은율은 “가볍고 즐겁게 볼 수 있는 작품은 아니지만 극과 음악이 갖고 있는 서정적이면서 강렬한 색깔이 몇 번이고 다시 보고 싶게 만드는 작품”이라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한 가지. 이은율은 노래할 때와 대사를 칠 때의 목소리 톤이 완전히 다르다(이런 배우는 많지 않다). 실은 둘 다 매력적이다. 듣고 있으면, 끝없이 어두운 ‘구멍(홀)’ 속으로 빠져드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 황홀하다.

양형모 기자 ranb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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