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지영 기자의 문학뜨락]젊은 시인들의 脫장르 컬래버레이션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10월 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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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눈을 감아도 선명하다. 눈을 감으니 점점 선명해진다.’ ‘마음이, 마음들이 욕조에 물을 받는다.’

 이 시적인 표현들은 시인 오은 씨(34)가 신인 듀오 ‘오프온오프’의 신곡 ‘배스’를 향해 전한 메시지다. 시인은 오프온오프의 공식 사이트 게시판에 이 문장들을 올렸다. 오은 시인뿐 아니다. 박준 시인(33)은 최근 라디오 프로그램 ‘힙합詩대’에 출연해 래퍼 베이식과 컬래버레이션 무대를 펼쳤다. 베이식은 힙합 서바이벌 프로그램 ‘쇼미더머니4’의 우승자다. 이날 김경주 시인(40)과 1세대 래퍼 MC메타, 김봉현 힙합저널리스트가 함께 만든 그룹 ‘포에틱 저스티스’의 공연도 있었다.

 시의 시대가 다시 왔다고들 한다. 실제로 올해 교보문고의 시집 판매량은 전년 대비 30%를 훌쩍 넘긴 증가세를 보였다. 시집 베스트셀러 목록도 다채롭다. 기형도의 ‘입 속의 검은 잎’ 같은 스테디셀러도 눈에 띄지만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등 큰 인기를 모은 복간본 시집을 비롯해 최승자 시인의 ‘빈 배처럼 텅 비어’, 김용택 시인의 ‘울고 들어온 너에게’ 등 스타 시인들의 새 시집이 묵직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여기에 박준 시인의 ‘당신의 이름을 지어다가 며칠을 먹었다’, 오은 시인의 ‘유에서 유’, 김민정 시인(40)의 ‘아름답고 쓸모없기를’ 등 젊은 시인들의 시집이 자리 잡고 있다.

 흥미로운 건 젊은 시인들의 ‘장르 불문 활약’이다. 시와 가요, 힙합의 만남을 시도하고, 박성준 이이체 등 젊은 시인들은 팟캐스트 ‘젊은 시인의 다락방’을 통해 독자를 만난다. 시인 신미나 씨(39)는 소소한 일상을 만화로 그리면서 맞춤한 시 한 편을 함께 소개하는 시 웹툰 ‘시시(詩詩)하고 따뜻한 일상’으로 화제를 모았다. 시인들이 뭉쳐 만든 독립잡지 ‘더 멀리’, ‘조립형 text’의 글쓰기는 음악, 영화, 여행 등 문학 밖의 분야를 넘나들고 형식도 파격적이다. 마리끌레르 같은 패션잡지에 소개되는 것에도 개의치 않는다. 시와 술에 올인하던 선배 시인들을 떠올리면 이들의 활동은 자유롭다.

 시집 서점 ‘위트 앤 시니컬’을 운영하는 시인 유희경 씨(36)에게 젊은 시인들의 이런 다양한 활약의 의미를 물었다. “문학만이 답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시인은 시만 써야 한다는 생각도 하지 않는다. 시인도 방송에 나올 수 있고 아이돌도 좋아할 수 있다.” 그렇게 자기의 목소리를 기꺼이 내고자 하는 젊은 시인들로 인해서 오늘의 한국문학은 풍요롭다.

김지영 기자 kimjy@donga.com
#시인#시집#오은#오프온오프#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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