낮엔 거대 빙하에 놀라고… 밤엔 선상 파티에 취하고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10월 8일 03시 00분


[조성하 여행 전문기자의 休]‘여행자의 로망’ 알래스카 크루즈

바다로 흘러드는 이 거대한 빙하를 이렇듯 가까이 배 위에서 보기란 크라운 프린세스 호로 떠난 알래스카크루즈 8일간 일정 중에 하이라이트라 할 만했다. 주노 북방 180km의 글래시어베이 국립공원 내 타르 내해에 있는 이 마저리 빙하는 폭 1.6km에 깊이는 110m(수면 아래 30m포함). 글래시어베이 국립공원(미국 알래스카 주)=조성하 기자 summer@donga.com
바다로 흘러드는 이 거대한 빙하를 이렇듯 가까이 배 위에서 보기란 크라운 프린세스 호로 떠난 알래스카크루즈 8일간 일정 중에 하이라이트라 할 만했다. 주노 북방 180km의 글래시어베이 국립공원 내 타르 내해에 있는 이 마저리 빙하는 폭 1.6km에 깊이는 110m(수면 아래 30m포함). 글래시어베이 국립공원(미국 알래스카 주)=조성하 기자 summer@donga.com
 크루즈 체험 후엔 온통 이 생각뿐이다. 이보다 더 좋은 여행은 없다는…. 크루즈는 여행길에서 감내할 수밖에 없는 통상의 불편에서 해방시켜 준다. 매일 짐을 싸서 옮기고 푸는 수고, 이동 중의 지루함과 시간손실, 일정과 일행을 따라야하는 의무감과 거기서 비롯된 피로, 생면부지 일행과 좋든 싫든 동행하며 겪는 갈등 같은 것에서 벗어날 수 있다니. 

 크루즈여행은 나이를 탄다. 50대 이상에게 더 좋아 보인다. 그 독특한 스타일에 내재한 해방감과 정신적 여유에서다. 그 해방감과 여유는 그걸 즐길 만한 연륜에 도달해야만 얻을 수 있는 인생의 선물이다. 그런 크루즈의 행선지 중에서도 알래스카는 더더욱 각별했다. 미국이라곤 해도 미국적이지 않고, 100여 년 전 골드러시 유산이 남은 곳만 주로 찾아가서다. 주노와 스캐그웨이, 케치칸은 물론이고 글래시어베이 국립공원도 배(혹은 비행기)가 아니면 갈 수 없는 곳이라 더더욱 그렇다. 

 알래스카는 피서지로도 그만이었다. 8월 말∼9월 초 기온은 14∼16도. 추적추적 내리는 비와 찬 바닷물, 빙하 때문인지 날씨는 겨울을 방불케 했다. 그런데다 빙하설원(주노의 멘든홀 빙하)에서 개 썰매를 타고 빙하산악(글래시어베이 국립공원)의 연안을 크루즈 하다보니 한국 무더위는 싹 잊혀졌다.

 알래스카 크루즈의 시즌은 넉 달 반(5월∼9월 중순)으로 짧다. 그래서 서두르지 않으면 원하는 시기에 승선하기 힘들다. 그러니 작심했다면 미루지 말자. 운항은 내년 5월에 시작하지만 예약은 이미 뜨겁다. 이 기사를 지금 쓰는 것도 원하는 시기에 원하는 등급객실을 확보하려면 지금부터 서둘러야 한다는 걸 알려주기 위해서다.

 8월 27일 정오, 미국 워싱턴 주 시애틀의 크루즈부두. 출항 네 시간 전이건만 실내체육관 모습의 수속장은 꽤 붐볐다. 하기야 승객이 3000명도 넘으니…. 절차는 공항과 같다. 짐을 부치고 여권제시 후 승선카드를 받으면 끝. 그러고는 갱웨이(Gangway·승하선용 통로)로 배에 오른다. 그런데 말이 배지 11만3000t 19층 덱(deck)의 크루즈선박은 고층호텔 그 자체였다. 이 배는 프린세스 크루즈 그룹이 보유한 17척 크루즈 선박의 하나인 크라운 프린세스 호. 승무원만 1200명이다. 

 내 선실(Stateroom)은 바하 덱(Baja Deck·괄호 안에 영어를 쓰는 이유는 실제로 여행할 때 의사소통에 도움을 주기 위해서다)의 왼쪽(Portside) 후미(Aft). 선박에서 덱(갑판)은 건물의 ‘층’인데 이 배는 19개 덱으로 구성됐다. 이 중 선실은 7∼15덱. 선실도 가격별로 여러 등급인데 내 선실은 발코니가 딸려 있었다. 킹사이즈 침대에 화장대 겸용 책상, TV가 놓인 구석장에 옷걸이 공간, 샤워 부스가 딸린 화장실이 오밀조밀 배치된 실내는 넓지도 좁지도 않았다. 하얀 커튼을 통해 햇볕이 쏟아져 들어와 분위기는 쾌적했다. 프린세스 크루즈는 크루즈선사 중 최초로 발코니선실을 80%까지 늘리면서도 합리적 가격을 실현한 선구자로 평가받는다.

 오후 네 시. 배는 모항 시애틀을 떠났다. 앞으로 8일간 배는 크고 작은 섬과 빙하의 유산인 피오르드, 그리고 육지해안선에 둘러싸인 좁은 바다를 남북으로 관통하는 ‘인사이드 패시지(Inside Passage·내해수로)’를 운항한다. 우선 사흘째 오전까지 38시간은 내내 해상이다. 기항은 3, 4일째 주노와 스캐그웨이. 여기선 자신이 별도로 돈을 내고 예약한 기항지투어(Shore Excursion)를 즐길 수 있다. 글래시어베이 국립공원 탐방은 5일째 오전. 그 다음에 배는 선수를 돌려 시애틀 귀항항로에 들어선다. 6, 7일째엔 케치칸(6일째)과 빅토리아(캐나다 브리티시컬럼비아 주 밴쿠버 섬)에 기항한다. 시애틀 도착은 8일째 새벽. 하선은 오전 7시부터다. 

 이 일정만 보면 무척 한가롭게 보인다. 그런데 승선해 보면 그렇지 않다. 눈코 뜰 새 없이 바삐 돌아간다. 물론 즐길 욕심이 없는 ‘귀차니스트’라면 별 문제 없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면 하루에 한 시간은 꼬박 다음 날 즐길 일정을 짜는데 골몰하게 된다. 교재는 매일 객실로 배달되는 ‘영어소식지(Princess Patter)’. 기항지의 날씨는 물론 오전 6시부터 오후 11시까지 배 안에서 벌어지는 선상이벤트(줌바댄스, 볼룸댄스, 영화와 콘서트, 극장 쇼, 건강세미나, 기항지쇼핑 등)와 보석 면세품 할인세일 등의 행사를 시간별로 알려준다.

선박 자체가 ‘여행지’로 발전한 크루즈여행

크루즈여행의 묘미는 이런 여유에 있다. 크라운프린세스 호 16층 덱의 전망 자쿠지.
크루즈여행의 묘미는 이런 여유에 있다. 크라운프린세스 호 16층 덱의 전망 자쿠지.
 크루즈는 더 이상 기항지투어를 위한 운송수단에 머물지 않는다. 배 자체가 여행의 어트랙션(Attraction·매력적인 즐길 거리)이다. 21세기 들어 크루즈선박이 대형화, 고급화, 다양화한 결과다. 크라운 프린세스만 해도 건조한 지 10년이 지났지만 시설은 상상을 초월할 만큼 훌륭했다. 그런데 내년에 상하이를 모항으로 출항할 새로운 선박은 크라운 프린세스를 능가할 최고급 초대형선박(14만3000t·승객 3600명)이어서 기대가 크다.  

 기자는 크루즈선박을 ‘도시’로 생각한다. 선실은 호텔, 5∼7층의 아트리움 덱(숍, 레스토랑, 바, 카지노, 극장, 공연장이 밀집된 높은 천장의 다목적 공간과 복도)은 다운타운 유흥가다. 뷔페식당과 실내외수영장, 선베드(Sun bed)에 누워 낮엔 선탠을 하고 밤엔 영화를 보는 풀사이드(Poolside), 짐(Gym)과 스파, 사우나가 있는 16층은 리조트, 나이트클럽과 수평선을 바라보며 퍼팅과 농구를 즐기는 인조그린의 18, 19층은 전망공원인 셈이다. 이 중 ‘별밤에 영화보기(Movie Under the Stars)’는 인기만점이다. 칵테일을 홀짝이며 즐기는 한밤의 야외 영화관람. 프린세스 크루즈에서만 누릴 수 있는 특별한 즐거움이었다. 

해상에 펼쳐진 ‘다이닝(Dining·식사)’ 천국

 크루즈 떠나기 전에 꼭 할 게 있다. 단식을 해서라도 식사량 줄이기다. 선상 과식으로 인한 체중증가를 막기 위해서다. 무제한 제공하는 음식공세에 맞서 자제를 하기란 쉽지 않다. 그런데 먹고 싶은 욕망과 맞서는 것이 과연 옳은 일일까. 먹고 마시기야말로 크루즈여행 중에서 포기할 수 없는 즐거움 중 하나이므로. 

 알다시피 크루즈는 ‘올 인클루시브(All Inclusive·숙식 등 필수 지출 항목 모두 포함)’여행이다. 레스토랑 다이닝과 패스트푸드(햄버거, 핫도그, 피자, 바비큐 등)에 음료(알코올 음료 제외)는 물론이고 아이스크림까지 여행비에 포함돼 있다. 14곳의 식당엔 뷔페(2곳)와 레스토랑(5곳)이 있고 이 중 29달러(이하 미화)의 커버 차지(Cover Charge·입장료)를 받는 2곳을 뺀 나머지 레스토랑에선 3∼6코스 디너를 원하는 만큼 즐길 수 있다.

배를 타고 가야만 제대로 즐길 수 있는 알래스카

 기자가 알래스카를 찾은 건 이번이 두 번째. 처음에는 비행기로 앵커리지로 날아가 자동차와 페리로 남쪽해안과 북쪽산악(미 대륙 최고봉인 옛 지명 매킨리 산이 있는 드날리 국립공원)의 빙하를 취재했다. 이번에 크루즈로 찾은 주노와 스캐그웨이, 케치칸 세 곳은 육로로는 갈 수 없는 벽지다. 오로지 뱃길과 비행기로만 오갈 수 있는데, 크루즈는 그중 최고의 수단으로 보였다.

 타이드워터 빙하(Tidewater Glacier·바다에 접한 빙하)가 11개나 포진한 글래시어베이 국립공원 역시 육로접근이 불가능해 크루즈가 유일한 탐방수단이다. 가장 압권인 마저리 빙하는 계곡을 따라 흐르다 바다와 만나 높이 80m의 빙벽을 이룬다. 거기선 간헐적으로 얼음이 바다로 떨어지며 굉음을 낸다. 그런 자연의 경이를 크루즈 19층 전망대에서 편안히 즐길 수 있으니 크루즈가 지상최고의 여행임을 다시 한번 확인했다.

 알래스카 주도인 주노(주민 3만2400명)는 미국의 다른 49개 주도에는 없는 두 가지 특징을 갖고 있다. 하나는 다른 나라와 국경(캐나다)을 접하고 있고, 또 다른 하나는 타도시로 가는 도로가 없다는 것. 그 주노에서 선택한 기항지투어는 헬기로 15km 정도 떨어진 멘든홀 빙하로 가서 개썰매를 타는 것이었다. 그런 뒤엔 시내 ‘레드독(Red Dog)’ 살롱에서 컨트리뮤직을 들으며 시위치 맥주(에일)를 즐겼다. 

 이튿날 찾은 스캐그웨이(주민 1106명)는 1897년 클롱다이크(캐나다 유콘 주) 골드러시 때 노다지꾼들이 내륙의 광산을 찾기 위해 배를 타고 온 곳. 중심가는 지금도 당시 모습 그대로 보존돼 있다. 놀이공원을 연상시킬 만큼 아기자기하다.

 북위 55도의 케치칸(주민 8050명)은 알래스카 특산물인 연어잡이 어항. 역시 육로통행이 불가능한 오지인데 부둣가에 즐비한 수상비행기와 그 수상비행기의 부산한 이착륙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남쪽 시애틀까지는 물길로 1100km.

알래스카 주(미국)에서 조성하 여행 전문기자 summer@donga.com 

※여행정보

 프린세스 크루즈: 1965년 시애틀에서 운항 개시, 현재 세계 3위 규모. 여름엔 알래스카, 겨울엔 중남미와 오세아니아(뉴질랜드 호주 타히티 등 남태평양 섬)를 운항 중. 내년엔 상하이(모항)에서 출발하는 다양한 크루즈상품을 준비 중. ◇2017년 알래스카 일정: 출항은 5월 5일∼9월 23일. 일정(5개)은 7∼10일(선상 체류 기준). 구매는 여행사, 정보는 ‘카니발 코퍼레이션 코리아’ 홈페이지(www.princesscruises.co.kr). 문의 02-318-1918

 사전 준비: 크루즈를 제대로 즐기려면 준비가 완벽해야 한다. 가장 중요한 것은 기항지투어 사전예약. 인기상품은 금방 매진되니 조기 예약이 최고의 전략. 선상 공식행사(이틀간 저녁)에선 정장과 드레스가 필수. 남자는 나비넥타이, 여자는 롱드레스 강추. 199달러(8일 기준)에 전 일정을 기념 촬영(정장과 스냅)해 인화해 주고 파일에도 담아주는 서비스도 있다.
#알래스카#크루즈 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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