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일주일 동안 385편의 독자 서평이 투고됐습니다. 이 중 한 편을 선정해 싣습니다.
운 좋게 대학 졸업 전에 취업이 되었다. 취업만 된다면 큰 부담감과 스트레스는 사라질 줄 알았지만, 입사 후에는 또 다른 무게의 업무 스트레스가 주어졌고 이는 취업 전의 스트레스보다 결코 뒤지지 않았다. 생각해 보면 취업을 준비할 때나 입사 후 일을 할 때나 가장 힘들었던 점은 비슷했다. 어떤 상황에서도 긍정적인 멘털을 유지하는 것. 자기소개서를 쓸 때나 불가능해 보이는 업무를 할 때나 늘 ‘할 수 있다’는 긍정은 성공의 필요조건이었다.
긍정적인 사람은 매사에 열정적이다. 자연히 성공할 가능성도 크다. 그러나 모든 상황과 조건을 배제한 채 오직 긍정만을 찬양하는 것은 무척 부자연스럽다. 그 부자연스러움을 깊게 꼬집는 작가가 바로 바버라 에런라이크다. 그의 저서 ‘긍정의 배신’은 바로 이런 ‘긍정’에 덧씌워진 속임수를 파헤친다. 저자는 긍정을 부정하는 대신 긍정이 사람들의 내면에 작동하는 기제를 분석함으로써 긍정이 보여주는 견고한 구조를 조명한다.
저자에 따르면 긍정은 ‘더 나은 것’을 ‘더 많이’ 추구하는 태도로 이어진다. 이는 모든 형태의 재화 및 서비스의 수요 창출과 매우 긴밀한 관계를 갖는다. 무제한적 긍정은 무한 소비의 자유로 연결되는 식으로 자본주의와 합을 이룬다. 무엇이든 사서 쓰고 버릴 수 있는 세상에서 우리는 욕망의 긍정을 통해 시장자본주의 체제를 강화한다. 그러는 한편 조밀한 경제구조 안의 소비주체로 거듭나기 위해 자신의 상품가치를 계발해야 할 책무를 떠안는다.
자기 억압의 기제를 견뎌내는 인간상이 필요한 자본주의 사회는 자연히 긍정을 찬미할 수밖에 없다. 이런 공모적 관계는 일부 개신교에 대한 비판으로도 확장된다. 저자는 더 많은 부와 명예를 현세의 구원 징표로 여기는 긍정의 믿음 안에서 가장 세속적인 것을 가장 거룩한 것으로 추앙하는 이들에게도 비판의 목소리를 던진다.
긍정 비판을 통해 저자는 삶의 모든 잘못을 짊어진 평범한 개인들을 구한다. ‘긍정적이지 않다’는 이유로 평가된 그들의 실패가 전부 그들 각각의 탓일 수는 없다. 이런 대답은 어쩐지 우리 사회에 특히 필요한 울림처럼 들려온다. 우리가 겪을 수밖에 없는 실패, 정확히 말하자면 시행착오 과정에 대해 우리가 짊어져야 하는 사회적 고통에는 정말로 모순이 없는가. 이제 만들어진 긍정 대신, 빼앗겨온 긍정을 되물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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