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을 여는 국군의 날과 개천절 사이에 노인의 날이 있었다. 올해로 20회를 맞는 이 법정기념일이 처음 시행되던 1997년, 노인 문제는 아직 절박한 사회 문제로 인식되기 전이었다. 다시 2006년에 유엔이 ‘세계 노인 학대 인식의 날’을 제정한 이후에도 사정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올해 노인의 날을 기해 심각한 내용의 보고서가 발표되었다. 여기서 지적되는 노인 문제의 위기는 독거, 궁핍, 질환 및 학대로 요약된다.
궁핍과 질병과 죽음이 온 나라에 일상적으로 만연했던 과거에도 노인은 지금보다 덜 학대받았다. 노인은 홀로 살지 않는다는 관습적 원칙이 작동하는 사회였기 때문이다. 따라서 노인 문제는 사회적 이슈가 될 일이 별로 없었다. 문제는 노인보다 아동이었다. 가장 방치되고 학대받는 취약계층은 아동이었기 때문이다. 노인은 대체로 지금보다 일찍 세상을 떠났지만, 아동은 노인이 되어 보기도 전에 짧은 생을 마치곤 했다.
‘요즘 조선인의 사망률이 너무 높다. 매년 60만 명이 출생하고 40만 명이 사망한다. 그중에서 아동의 사망이 18만 명을 넘어섰다.’(동아일보 1940년 5월 4일자)
출생자와 사망자의 비율이 3 대 2인데, 사망 인구의 근 절반이 아동이라는 말이다. 아이들 중 30%가 열 살을 못 넘기는 현실이었다. 신문은 1면 사설에서 걱정스레 진단한다.
‘국민의 생장(生長)을 대표하는 아동의 처지가 이러하니 어찌 국민 전체의 건전한 존속을 바라겠는가.’
한국인의 평균수명이 처음으로 40세를 넘어선 건 1940년이었다. 노인 수명도 짧았지만 무엇보다 높은 아동사망률 때문이었다. 아동의 사망 원인은 소화기병이 23%로 가장 많았고 호흡기 질환, 전염병, 감기 등 대개가 열악한 생활여건에서 기인하는 질병이었다. 노인의 경우도 별반 다를 바 없었다.
‘소화기병의 원인이 흔히들 과식이라고 속단하기 쉽지만 실제로는 영양실조로 인해 위장이 약해지고 잦은 고장을 일으키게 되는 것이다.’
부실한 섭취와 불량한 위생이 소화기병을 야기한다고 사설은 진단한다. 그리고 단언한다.
‘일반의 생활이 넉넉해지면 질병은 줄고 수명은 길어지는 것이니….’
그 빈궁의 시대에 태어나 살아남은 이들이 지금 76세가 되어 있다. 남자 평균수명에 근접하는 나이다. 한 시절 ‘가공할 아동사망률’에 노출되었던 아동들은 이제 노령화 사회의 주역으로 진입하면서 여태껏 볼 수 없던 새로운 단계의 운명에 대면하고 있다. 노년은 수명을 연장하는 만큼 취약계층으로 전락할 위기에 더욱 노출되어 간다.
이러한 역설 속에 맞은 이번 노인의 날에 즈음해, 한국인의 기대수명이 다시 기록을 경신해 82세를 넘어섰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세계 10위라고 한다.
‘조선인은 생의 출발부터가 극히 위험하고 불건전한 상태에 놓여 있어서 한 사람으로서 성장한다는 것은 그저 자연도태에서 이긴 자에게만 가능하다 할 수 있다.’(동아일보 1940년 1월 4일자) 이 76년 전의 기사에서 ‘조선인의 생의 출발’이 아닌 ‘노년의 출발’로 주어를 바꾼다면 혹시 오늘의 기사처럼 보이지 않을까.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