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저녁으로 제법 쌀쌀해졌다. 시간을 기다리며 마시는 ‘개암 커피’ 향이 요즘 따라 기막히다. 무엇을 해도 기분 좋은 가을 풍경에 취해서일까.
개암 커피라고? 고개를 갸우뚱하는 분이 많을 줄 안다. 누구나 한 번쯤은 마셨을 법한, 부드럽고 향긋한 헤이즐넛(hazelnut) 커피가 바로 개암 커피다. 헤이즐넛의 우리말이 개암이고, 헤이즐(hazel)은 개암나무다. 왜 있잖은가. 개암은 도깨비들이 그 깨지는 소리에 화들짝 놀라 방망이도 내팽개치고 도망갔다는, 전래 동화 속의 바로 그 열매다. 모양은 도토리와 비슷하지만 맛은 밤보다 고소하다. 개암과 개암나무를 깨금과 깨금나무라고 하는 이도 있지만 둘 다 강원 전북 충청 지방의 사투리다. 자, 오늘부터 헤이즐넛 커피를 개암 커피로 불러보는 것은 어떨까.
마시고 먹을 때 가끔 ‘슴슴하다’라는 단어를 떠올린다. “맛 좀 볼래. 내 입에는 슴슴한데” “나물은 슴슴하게 무쳐야지” 등에서 보듯 슴슴하다는 ‘조금 싱겁다’는 뜻으로 많이 쓴다. 한데 우리 사전은 슴슴하다를 ‘심심하다의 잘못’이라고 고집한다. 슴슴하다의 세력도 만만찮은데 말이다. 슴슴하다는 말은 싱겁다거나 심심하다와는 또 다른 감칠맛이 있다. 이쯤이면 슴슴하다를 복수표준어로 삼는 걸 검토해야 하지 않을까. 북한에서는 슴슴하다는 물론이고 ‘무슴슴하다’도 문화어로 삼고 있다. 무슴슴하다는 ‘아무 맛도 없이 슴슴하다’는 뜻이다.
그러고 보니 슴슴하다보다 더 찬밥 신세인 낱말도 있다. ‘음식 따위가 싱겁다’거나, ‘본래의 맛과 느낌에서 뭔가 부족한 기분이 들 때’ 쓰는 ‘닝닝하다’다. 언중은 밍밍하다, 맹맹하다와 함께 닝닝하다도 입길에 올리지만 ‘밍밍하다’와 ‘느끼하다’의 경남 지역 사투리 신세다. 그마저도 ‘우리말샘’을 통해 겨우 알려졌다.
국민참여형 온라인 국어사전인 ‘우리말샘’이 5일 개통한 사실을 아시는지. 누구나 새로운 단어를 추가할 수 있고 사전의 뜻풀이를 수정할 수도 있는 웹 기반 사전이다. 우리말 위키피디아 사전이라고나 할까. 사실 표준국어대사전은 규범 사전이어서 실생활 어휘들을 때맞춰 폭넓게 담아내지 못하는 한계가 있다. 우리말샘에 표제어로 올랐다고 해서 곧바로 표준어가 되는 건 아니다. 하지만 우리말의 곳간이 더 풍성해질 것임은 틀림없다. ‘닝닝하다’가 새삼 주목을 받는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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