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찌 매화와 대나무를 사랑한다고 하여 다른 초목들을 모두 버릴 것이며 어찌 피리와 비파 연주를 좋아한다고 하여 다른 악기들의 연주를 모두 멈추게 할 것인가 豈有愛梅竹而欲盡廢群卉 好우瑟而欲盡停衆樂乎 (기유애매죽이욕진폐군훼 호우슬이욕진정중악호)
―성현 ‘허백당집(虛白堂集)’
글을 짓는 목적은 무엇이며 어떤 형식으로 짓는 것이 좋은 문장인가. 문학이 예술성을 추구해야 하는가 아니면 효용성을 추구해야 하는가의 논쟁은 여러 시대를 통해 살펴볼 수 있다. ‘카프문학’ ‘리얼리즘’ ‘계몽문학’ 등은 근대의 논쟁 속에서 살펴볼 수 있는 말들이고 ‘도를 싣는 그릇(載道之器)’ ‘도와 문장은 일치하여야 한다(道文一致)’ ‘문체반정(文體反正)’ 등은 전통시대의 논쟁 속에서 살펴볼 수 있는 말들이다.
조선 초기 중국과의 교류에서 주고받는 외교문서의 격식, 사신으로 갔을 때와 사신을 맞이하면서 서로 주고받는 시문학은 외교의 가장 중요한 수단이었다. 형식을 갖춘 문학 창작의 역량이 국격을 높이는 하나의 도구가 되었다. 그러나 국가가 안정되면서 신진 학자들이 정계에 진출하였고 이들은 형식적 수사에 반대하며 문학이 경술(經術)에 바탕을 두어야 함을 주장하였다. ‘도(道)’라는 하나의 기준으로 문장이 평가되는 새로운 사조가 생겨난 것이다.
조선 초기의 문장가였던 성현은 이렇게 하나의 잣대로 문장을 재단하는 것에 강하게 반대 의견을 표명하였다. 다양성과 개성을 중시하였던 것이다. 입에서 나온 말은 모두 문장이 되고 책에 수록된 일들은 모두 문장이 된다고도 하였다.
입에 맞는 하나의 음식만 먹고 살아갈 수도 없다. 그리고 사람의 기호와 입맛은 저마다 다름이 있다. 내가 추구하는 바와 다르다고 하여 틀리다고 해서는 안 된다. 매화와 대나무만 아름답게 여겨 다른 모든 꽃과 나무를 뽑아버릴 수는 없다. 사람의 눈에 잘 띄지 않는 어느 골짜기의 이름 없는 들풀도 그 자체로 아름답다.
성현(成俔·1439∼1504)의 본관은 창녕(昌寧), 호는 허백당(虛白堂)이다. 문과에 급제하여 예조판서, 대제학을 거쳤으며 ‘용재총화(용齋叢話)’ ‘악학궤범(樂學軌範)’ 등 다양한 분야의 저술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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