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완의 독서일기]엄마의 마지막 2년… 영원으로 남은 순간들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10월 1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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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설희 포토에세이 ‘엄마, 사라지지 마’

 길을 잃었다는 느낌이 든 것은 새로운 길을 만나고 난 다음이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그 길을 따라가면 마을이 나올 거라는 확신이 있었는데 또 다른 길을 만나고 나니 오히려 여태까지의 확신은 근거가 전혀 없는 것처럼 여겨졌다. 게다가 새로 만난 길이 낯익은 듯 보이기까지 했다. 그 길이 지나왔던 길이라면 똑같은 길을 맴돌고 있다는 뜻이기도 했다. 발걸음이 멈춰졌다. 아직 어두워지진 않았지만 해가 어느 쪽으로 지고 있는지 알 수 없었다. 어디서부터 잘못됐는지를 생각했다. 길이 아닌 것 같았던 덤불을 헤치고 나와 다행스럽게 만났던 그 길이 잘못의 시작인 것처럼 여겨지기도 하고 냇물 속으로 사라졌다 다시 나타난 길에서 잘못 든 것 같기도 했다.

 어둠이 깔리기 시작했다. 새 산길을 만났을 때는 눈에 익은 길 같았는데 막상 걷다 보니 지나온 길 같지는 않았다. 낯선 길은 두렵기도 했지만 알 수 없는 희망을 풍기기도 했다. 희망도 어두울 수 있다는 건 어둠 속에서도 길이 보이는 것과는 전혀 별개였다. 어두운 희망은 어두운 절망과 다르지 않았다.

 어둠이 눈을 뺏어가자 귀가 열리기 시작했다. 숲은 속삭인다. ‘멈춰라.’ 하지만 걸음을 멈출 수는 없었다. 숲은 묻는다. ‘왜 왔니?’ 대답을 할 수가 없다. 길을 잃기 전에는 대답할 수 있었지만 길을 잃고 난 다음에는 답할 수 있는 말이 없다. ‘왜 왔을까’와 ‘어디서부터 잘못됐을까’는 다른 말인가.

 누구에게나 절망적이지만 멈출 수 없는 순간들이 있다. 한설희의 ‘엄마, 사라지지 마’(사진)는 남편을 떠나보낸 후 나이 들어 차츰 스러져 가는 엄마의 모습을 딸(저자)이 사진과 글로 담아냈다. 엄마가 마주한 시간은 하루로 치면 해가 지고 사방이 어둑어둑해지는 무렵이다. 엄마를 더 이상 잡을 수 없는 절박함에 카메라 셔터를 누르기 시작한 딸에게 희망이 있었을까? 어쩌면 어디가 어딘지 모르는 채 걷는 산길이 아니었을까?

 순간을 영원으로 붙잡아 놓는 기계, 카메라. 하지만 어떤 카메라도 세월을 돌려놓지 못한다. 그 세월과 함께 떠나버린 것들을 데려오지 못한다. 딸이 엄마의 사진에 그토록 조바심을 내는 이유일 것이다. 딸의 나이 예순아홉 살. 엄마 나이 아흔한 살. 저자는 노모가 돌아가시기 전 2년 동안 엄마의 모습을 사진으로 남겼다. ‘엄마, 사라지지 마’라는 애끊는 절규 속에 엄마는 다시 태어난다. 엄마가 아닌 한 사람으로.
 
김창완 가수·탤런트


#엄마 사라지지 마#도서#한설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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