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정훈의 호모부커스]서문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10월 17일 03시 00분


코멘트

표정훈 출판평론가
표정훈 출판평론가
서점에서 책을 고를 때 먼저 펼쳐 보는 부분은 목차와 서문일 것이다. 책 내용의 대강과 함께 저자의 집필 의도나 목적을 가늠할 수 있기 때문이다. 서문은 배치하기로는 책에서 가장 앞이지만 쓰기로는 원고를 마무리 지은 다음이다. 책 전체 내용의 축도(縮圖)이자 저자의 집필 회고이기 때문이다. 그런 서문 쓰기가 무척 어렵다고 토로하는 저자들이 드물지 않다.

 “별이 빛나는 창공을 보고, 갈 수가 있고 또 가야만 하는 길의 지도를 읽을 수 있었던 시대는 얼마나 행복했던가? 그리고 별빛이 그 길을 훤히 밝혀주던 시대는 얼마나 행복했던가?” 죄르지 루카치의 ‘소설의 이론’ 서문의 유명한 첫 부분이다. 책을 읽지 않았어도 이 부분만은 알고 있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요한 하위징아의 ‘중세의 가을’ 서문은 역사에 대한 관심의 일반적 성격을 잘 요약한 것으로 유명하다.

 “우리가 과거에 대해서 눈길을 돌리는 것은 주로 새로운 것의 근원을 찾기 위해서이다. 우리는 후대에 와서 찬란하게 빛나는 새로운 아이디어와 생활 형식이 어떤 경로로 생겨나게 되었는지 그 근원을 알고 싶은 것이다. 우리는 대체로 보아 후대의 시대를 밝혀 주는 데 도움이 되는 관점에서만 과거를 살펴본다.”(이종인 옮김·연암서가)

 서문이 책 한 권에 국한되지 않고 저자의 사상 전반을 요약한 경우도 있다. 철학자 칸트의 ‘순수이성비판’ 서문이나 헤겔의 ‘정신현상학’ 서문이 그러하다. 주자(朱子)가 ‘대학’과 ‘중용’을 ‘논어’, ‘맹자’와 함께 사서(四書)로 재편하며 집필한 ‘대학장구서’와 ‘중용장구서’도 성리학의 중요한 텍스트가 되었다.

 전통 동아시아의 문집에는 서(序) 외에 책 말미에 본문의 대강이나 간행 경위, 저자 관련 사항 등을 정리한 발문(跋文)을 실었다. 첫머리에는 제사(題詞)라 하여 책 내용이나 출간 의미에 관한 운문(韻文)을 싣기도 하였다. 문집은 저자 사후에 간행하는 것이 관례이니 서, 발문, 제사 등은 저자가 쓴 것이 아니다. 정몽주의 문집 ‘포은집’에는 송시열, 노수신 등이 쓴 서와 유성룡, 조호익 등이 쓴 발문이 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유명한 서문은 ‘국민 애송시’라 할 윤동주의 ‘서시(序詩)’일 것이다. ‘서시’라는 제목은 유고 정리와 출간 과정에서 유고 전체의 서(序)에 해당한다는 의미를 살려 붙인 것이다. 시인의 삶과 사상이 오롯하게 깃든 ‘서시’는 그 자체로 하나의 빼어난 ‘시적(詩的) 서문’이다.
 
표정훈 출판평론가
#서문#중세의 가을#요한 하위징아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