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사는 거의 없는데 공연 내내 퇴장도 없는 작품이에요. 상대의 대사를 듣고 다양한 표정과 몸짓 연기를 해야 하는 게 더 어렵더군요. 연기 인생 50년 만에 이런 작품은 처음이에요.”(정영숙)
TV드라마 ‘인어아가씨’ ‘웃어라 동해야’ ‘그대를 사랑합니다’ 등에서 어머니와 할머니 역할을 도맡아온 배우 정영숙(69)이 데뷔 48년 만에 처음으로 2인극에 도전한다. 그는 연극 ‘조씨고아, 복수의 씨앗’의 정영 역으로 지난해 동아연극상 연기상을 거머쥔 배우 하성광(46)과 함께 연극 ‘고모를 찾습니다’에서 호흡을 맞춘다.
최근 예술의전당에서 만난 이들은 자석처럼 끌리는 작품을 만나 행복하다고 말했다. 정영숙은 “엄청난 반전이 있는 작품”이라며 “TV 일일연속극 제안도 뒤이어 들어왔는데 이 작품에 집중하고 싶어 거절했다”고 말했다.
데뷔 21년 차인 하성광은 “2인극인데 1인극에 가깝다”며 “기존 희극에서 볼 수 없었던 신선함을 지녔다”고 설명했다.
국내 초연되는 이 작품은 캐나다 작가 모리스 패니치의 대표작이다. 19년간 26개국에서 공연될 정도로 인기다. 이 작품은 유일한 혈육인 고모 그레이스로부터 임종을 앞두고 있다는 편지를 받고 30년 만에 고모를 찾아 나선 조카 켐프의 이야기를 다뤘다. 허나 웬걸, 임종을 앞뒀다는 고모는 무슨 연유인지 사계절을 다 보내도록 정정하다. 극 막바지 켐프가 마주한 진실은 엄청난 반전 그 자체다.
110분의 러닝 타임 내내 투덜대는 켐프의 대사가 이어진다. 그레이스의 대사는 극이 거의 끝나갈 즈음에야 등장한다. 하성광은 “켐프의 대사가 무려 37쪽에 달한다”면서도 “관심을 받았던 ‘조씨고아…’의 한 많은 정영 역할과 180도 다른 성격의 캐릭터라 부담도 되지만 설렌다”고 말했다.
정영숙은 “전작이 히트를 치고 나면 배우로선 정말 차기작 선택이 어렵다”며 후배를 다독였다. 그는 “예전에 드라마 ‘백치 아다다’에서 말 못하는 언어장애인 역할을 맡았었는데, 다음 작품에서 말을 하니 사람들이 적응을 못 했다”며 “하지만 성광 씨 연기를 보면 전작의 그림자가 전혀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완벽하게 켐프를 그려낸다”고 했다.
하성광은 ‘고모…’의 대본을 처음 접하고 3년 전 작고한 아버지 생각이 많이 났다고 했다. “제가 집안의 막둥이인데,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며칠 전 ‘막둥아, 내 손톱 좀 깎아줘라’라고 하셨어요. 근데 제가 ‘아버지, 오늘 안 자르셔도 될 것 같아요’라고 답했죠. 돌이켜보면 아버지 말씀은 손톱 깎아달란 게 아니라 손 한번 만져달라는 거였는데…. 그게 가슴에 남아요.”
정영숙은 ‘고모…’에 대해 “조카와 고모 사이의 해프닝을 다룬 것 같지만 실은 현대사회에서 정신적으로 지치고 병든 사람들을 위로하는 따뜻한 작품”이라고 했다.
11월 22일부터 12월 11일까지 서울 예술의전당 자유소극장. 3만5000∼5만 원, 02-580-1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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