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평인 칼럼]밥 딜런과 김민기, 그리고 웹툰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10월 19일 03시 00분


밥 딜런의 노벨 문학상 수상… 문학의 경계 무너지는 신호
우리도 문학의 영역 확장해야
한국의 딜런 격인 김민기에게 문학상 주지 못할 이유 없어
웹툰도 치열한 작가정신 있다면 언젠가 문학상 수상자 나올 것

송평인 논설위원
송평인 논설위원
 밥 딜런이 노벨 문학상까지 받을 자격이 있는지 없는지는 모르겠다. 다만 분명한 것은 그가 쓴 노래의 가사들은 문학상은 아닐지라도 문학적으로 높은 평가를 받을 만하다는 사실이다.

 고작 ‘Blowin' in the wind’나 ‘Knocking on heaven's door’나 듣고 딜런을 안다고 해선 안 된다. 물론 이런 간단한 곡에서도 ‘The answer is blowin' in the wind(대답은 바람 속에 불고 있다)’ 같은 문장은 ‘The wind is blowin'(바람이 불고 있다)’이라는 진부한 문장을 비틀고 그 대답은 듣는 사람의 판단에 맡김으로써 충분히 시적이다.

 딜런의 음악가로서의 소질은 동시대 비틀스의 폴 매카트니에게 훨씬 못 미친다. 작곡자이자 지휘자인 레너드 번스타인은 매카트니의 ‘She's leaving home’은 클래식의 현악 4중주곡을 뛰어넘는다는 찬사를 보냈다. 딜런의 곡은 대부분 단조로운 코드 진행을 반복한다. 가령 ‘Knocking on heaven's door’는 ‘G-D-Am-G-D-C’의 무한 반복이다. 그의 곡은 가사에 귀 기울이지 않으면 몇몇 곡을 빼고는 썩 들을 만한 곡이 못 된다.

 시인 딜런의 모습은 ‘The times they are a-changin'’ 같은 긴 가사의 곡에서 더 잘 찾을 수 있다. 이 곡의 가사는 스티브 잡스가 절망에 처할 때마다 되뇌면서 스스로 용기를 북돋은 것으로도 유명하다. ‘펜으로 예언하는 작가와 비평가들이여/눈을 크게 뜨라/수레바퀴는 아직 돌고 있다. 섣불리 논하지 말고/섣불리 규정하지 말라/지금의 패자들이 나중에 승자가 될 것이니/시대가 변하고 있으므로.’ 가사의 마지막은 성경의 유명한 구절을 멋지게 차용하고 있다. ‘처음 된 자가 나중 될 것이니/시대가 변하고 있으므로.’

 노래의 가사는 노래 없이 읽어봐야 시라고 할 만한지 알 수 있다. 김민기는 고교 시절 함께 물놀이를 갔다가 죽은 친구를 안타까워하며 이렇게 노래했다. ‘검푸른 바닷가에 비가 내리면/어디가 하늘이고 어디가 물이요/그 깊은 바다 속에 고요히 잠기면/무엇이 산 것이고 무엇이 죽었소.’ 이것은 그 자체로 시다. 김민기는 여기에 멜로디를 실어 시를 직접 쓴 시인의 느낌으로 시를 노래했다. 이것이야말로 시인이자 싱어송라이터인 사람의, 함부로 따라할 수 없는 재능이다. 고은의 시가 딜런보다 못하겠는가. 딜런에게 주어진 상이 무슨 의미가 있다면 시와 음악의 융합에 바치는 찬사일 것이다.

 딜런이 단순히 시를 잘 쓰고, 음악을 통해 효과적으로 전달했다고 해서 높은 평가를 받는 것은 아니다. 그에게는 그 이상의 정신, 시인의 정신이 있었다. 1960년대 미국 저항문화를 상징할 단 한 사람을 꼽으라면 딜런이다. 그러나 그는 환호하는 사람들 속에서 구속받고 있다고 느꼈다. 그에게 저항은 자연스러운 감정의 발로일 때나 의미 있는 것이지 정치적으로 조직될 때는 진부한 선동일 뿐이었다. 그는 1966년 인기 절정의 시기에 돌연 공연 현장에서 사라졌다.

 딜런에 대한 노벨 문학상 수여는 문학의 완고한 경계가 허물어지는 과정이라고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우리라고 김민기 같은 이에게 문학상을 주지 못할 이유가 없다. 그의 ‘늙은 군인의 노래’나 ‘상록수’ 같은 노래도 시적인 가사를 갖고 있다. 예술에서 가장 개인적인 것이 가장 사회적이라는 말은 여기서도 통한다. ‘늙은 군인의 노래’는 정년퇴임하는 선임하사를 위해, ‘상록수’는 동료 직원들의 합동결혼식을 위해 만든 곡이지만 시위에서 널리 불려 한국의 저항문화를 대표하는 곡이 됐다. 그는 알고 보면 ‘공장의 불빛’에서 ‘지하철 1호선’까지 음악극을 만든 사람이기도 하다.

 우리만 문학의 영역을 계속 좁게 묶어둘 게 아니다. 요새 재능 있는 젊은이들이 뛰어들고 있는 웹툰은 어떤가. 소설이 아니라 웹툰이 TV 드라마와 영화의 원작이 되는 시대다. 치열한 작가 정신만 있다면 웹툰의 말풍선이 소설이나 희곡보다 훌륭한 문학이 되지 못할 이유가 없다. 딜런과 김민기의 노래가 시와 음악의 융합이라면 웹툰은 산문과 그림의 융합이다. 문학상 심사위원들은 더 바빠져야 한다. 펜으로 예언하는 자들이여 눈을 크게 뜨자. 시대가 변하고 있다.
 
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밥 딜런#김민기#웹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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