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벨 문학상 수상 결정 이후 밥 딜런(75)에 대한 국내 언론의 조명은 ‘1960년대’ ‘반전, 저항가수’ ‘Blowin' in the Wind’의 한정된 키워드에만 집중돼 있다. 딜런은 올해 37번째 앨범을 발매할 정도로 50년간 다양한 주제의 수많은 노래를 발표했다. 전문가들은, 정형화된 틀을 거부하며 끝없이 자신을 변화시킨 딜런 예술 세계의 반세기 전체를 조망해야 그의 수상 의의를 온전히 이해할 수 있다고 입을 모은다. 저항가수라는 당대의 호칭을 공개적으로 혐오하며 모호한 시어와 변화무쌍한 공연으로 자신의 정체성을 끊임없이 바꿨고 1990, 2000년대까지도 훌륭한 음반을 냄으로써 딜런은 현대 미국 그 자체의 특질을 ‘육화’해냈다는 것이다.
‘음유시인 밥 딜런’의 저자이자 국내에서 유일하게 딜런에 관한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은 손광수 씨(동국대 강사)는 “1990년대 이후 딜런은 노래와 시의 전통성과 현대성을 새로운 방식으로 탐구했다”면서 “구전 과정에서 이야기 일부가 탈락돼 ‘미스터리 스토리’가 된 옛 미국 민요를 통해 역설적으로 가장 현대적인 아방가르드의 면모를 추출해내고 있다”고 했다. 손 씨는 1960, 70년대 작품들에서도 사회비판보다 사랑을 다룬 노래에서 딜런의 시적인 면모가 더 발견된다고 했다. ‘Blood on the Tracks’(1975년)에 대해 손 씨는 “부인과 불화를 겪으며 가장 내면적인 사랑만을 주제로 노래한 이 음반은 언어에 대한 실존적 성찰, 철학적 가사로 문학적 가치에서 딜런의 다른 명반들을 능가한다”고 했다.
미국 루이스앤드클라크대 강사 김영대 씨(대중음악평론가, 계간 ‘문학동네’ 편집위원)는 대중적 조명이 가장 덜한 딜런의 1980년대에 주목했다. ‘Tight Connection to My Heart (Has Anybody Seen My Love)’(1985년 앨범 ‘Empire Burlesque’ 수록 곡)에 대해 그는 “딜런이 늘 그 시대의 트렌드와 호흡하는 뮤지션임을 흥미롭게 보여준다”고 했다. 김 씨는 “Someone else is speakin' with my mouth, but I'm listening only to my heart”(다른 사람이 내 입으로 말하고 있지만 난 내 마음에만 귀를 기울인다네)라는 가사가 담긴 ‘I and I’(1983년 앨범 ‘Infidels’ 수록 곡)도 추천했다.
김경진 평론가는 딜런이 2012년 발표한 13분 54초짜리 대곡 ‘Tempest’에 대해 “길지만 지루함 없이 물 흐르듯 자연스러운 전개가 대단하다”며 들어보라고 권했다. 이경준 평론가는 “딜런은 음반 ‘Time Out of Mind’(1997년) ‘Love and Theft’(2001년) ‘Modern Times’(2006년)의 3부작을 통해 거장으로선 이례적으로 새 시대 음악 팬들에게도 받아들여질 생명력을 보여줬다”고 했다.
배순탁 평론가는 “혼돈과 거짓말이 지배하는 세계의 미래를 경멸적으로 노래한 ‘Time Out of Mind’와 9·11테러와 허리케인 카트리나에 대한 성찰이 녹아든 ‘Modern Times’는 스웨덴 한림원이 ‘귀로 듣는 시(詩)’라고 한 선정 이유가 무색하지 않은 작품들”이라면서 “올해 낸 ‘Fallen Angels’를 들으면 ‘훌륭한 미국 음악 전통 안에서 새로운 시적 표현을 창조해냈다’는 한림원의 찬사를 더 잘 이해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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