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연간 40조를 넘는 사교육 시장의 병폐는 누구의 책임일까. 그건 우리 모두의 책임이다. 정부의 책임이고, 교육계의 책임이고, 사회의 책임이고, 학부모의 책임이다.’―(조정래·풀꽃도 꽃이다·해냄) 》
낯선 이를 만났을 때 대화를 풀어 나갈 소재를 찾는 것은 여간 고역이 아니다. 어색한 분위기를 풀 만한 농담이나 상대가 공감대를 가질 만한 이야기 한두 개쯤은 있어야 대화가 술술 풀린다. 돌이켜 보면 같은 학교를 나오지 않은 사람과 학창 시절에 대해 얘기해 본 기억이 별로 없다. 모두가 10대를 거쳤을 텐데도 어색한 자리에서 낯선 이에게 그 시절에 대해 말하기가 꺼려진다.
그것엔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조정래 신작 ‘경쟁에 내몰려 피폐해진 아이들’에서 제시된 주제가 이를 잘 설명해준다. 한국인에게 초중고 시절은 대학이라는 관문을 향해 가는 길에 그치는 경우가 많다. 그 시절의 삶은 능동적이라기보다 학교와 부모에 의해 만들어진 수동적인 삶이 된다. 타의에 의해 대학이라는 종착지를 향해 허겁지겁 달린 시절에서 추억거리로 건질 만한 게 얼마나 될까.
소설은 2016년 대한민국 아이들의 삶 역시 이전 세대와 크게 다르지 않다는 사실을 적나라하게 보여 준다. 학교폭력이 난무하는 교실과 문제가 생기면 땜질식 처방으로 일관하는 학교, 자식의 일거수일투족을 손아귀에서 놓지 않으려는 학부모들이 등장한다.
안타까운 것은 이런 상황들이 소설 속의 주요 무대인 서울 강남에서만 벌어지는 일만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사교육이 금지됐던 시절이 차라리 나았다는 말이 나오고, “자녀를 이런 나라에서 키우기 싫다”며 떠나는 사람이 줄지 않고 있다. 교육 정책은 정권이 바뀔 때마다 출렁이고, 정책이 바뀌어 한국 아이들의 삶이 행복해졌다고 말하는 사람은 찾기 어려운 게 현실이다. 작가의 주장대로 이런 상황과 문제들이 반복되는 것이 우리 모두의 책임이라는 점을 부정하기 어렵다. 한국인의 대화에서 10대 학창 시절을 떠올리며 “행복했다”라는 말이 편안하게 나오기까지 얼마나 많은 시간이 걸려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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