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르만 헤세와 떼려야 뗄 수 없는 편집자는 폴커 미헬스다. 그는 독일의 대표적인 출판사 주어캄프에서 30년 넘게 헤세 전문 편집자로 일하면서 헤세 전집을 출간했다. 퇴직 후에도 헤세 선집을 엮고 작품을 연구했으며 헤세의 고향 칼프에 박물관을 세우는 일도 이끌었다. 미헬스 덕분에 우리는 헤세의 다양한 면모와 만날 수 있다.
하퍼 리에게는 J B 리핀코트 출판사의 편집자 테이 호호프가 있었다. 1957년 작가 지망생 하퍼 리가 가져온 단편소설 세 편을 읽어본 호호프는 그중 하나를 장편으로 고쳐 쓰라 권유했다. 하퍼 리가 고쳐 써 온 원고에 대해 호호프는 등장인물을 새롭게 제안하며 다시 고쳐 쓰라 요구했다. 전 세계적으로 4000만 부 이상 팔린 ‘앵무새 죽이기’(1960년)는 그렇게 탄생했다.
미셸 푸코의 박사학위 논문의 가치를 알아본 사람은 플롱 출판사의 편집자 필리프 아리에스였다. 프랑스 최고 출판사 갈리마르에서 거절당한 그 논문은 1961년 플롱 출판사에서 책으로 나왔다. 20세기 인문사회과학 명저로 손꼽히는 ‘광기의 역사’다. 아리에스는 박사학위 없이 국립도서관 사서, 열대농업 조사관, 편집자 등으로 일하면서 프랑스 역사학의 새로운 흐름을 주도한 역사학자이기도 했다.
인쇄출판 문화가 발달한 조선에 뛰어난 편집자들이 있었던 것은 당연하다. 서적 편찬, 교정, 정리 업무를 맡은 규장각 검서관(檢書官)이 대표적이다. 정조 때 등용된 박제가, 이덕무, 유득공, 서이수 등 서얼 출신 검서관들이 유명했다. 이들은 창덕궁에 있는 규장각 부속 건물 검서청에서 일했다. 같은 시대 정약용도 “진정한 지식과 정보의 기획편집자”(정민 한양대 교수)였으니 18세기 조선은 편집자의 시대였다.
편집자를 문장 다듬는 사람쯤으로 잘못 아는 경우가 여전히 있지만, 출판의 모든 단계에 편집자의 노고가 닿는다. 많은 저자들이 책 서문에서 편집자에게 감사하다고 말하는 것은 인사치레가 아니다. 그런 편집자들의 꿈은 무엇일까? 일본의 대표적인 출판사 이와나미쇼텐(巖波書店)에서 30년간 편집자로 일한 오오쓰카 노부카즈가 말한다.
“어느 날 어느 순간 독자 한 사람이 손에 든 책 한 권으로 현실 세계에서 짧은 시간 다른 우주에서 살 수 있다고 한다면, 그리고 책을 만든 사람과 읽은 사람이 일체가 되는 것처럼 느껴진다면 그 순간이 바로 유토피아가 아닐까.”(‘책으로 찾아가는 유토피아’)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