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 어려웠던 것 중 하나가 아랫사람에게 반말을 쓰는 일이었다. 존댓말은 일본에서도 사용하는데, 한국에서는 나이에 따라 말을 가려야 해서 만나자마자 나이를 묻고 어느 쪽이 위인지 알려고 하는 게 당황스러웠다.
일본에서는 20대와 50대도 친구가 될 수 있다. 나이가 어려도 일방적으로 반말을 쓰지 않고 존중하는 말을 쓴다. “친한 사이에도 예의를 지켜라”란 속담이 있어 편하게 말하다가도 상대가 존중하는 말투로 대답하면 바로 바꾸기도 한다.
한국에서 제일 힘들었던 것은 두 살 아래인 동서에게 반말을 쓰는 일이었다. 내가 계속 일방적으로 반말을 쓰고 동서가 존댓말을 쓰면 내가 교만한 태도를 취하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한번은 동서에게 편지를 썼다. 당숙모가 항상 나에게 “자네”라고 부르셔서 나도 두 살 아래인 동서에게 “자네”라고 편지에 썼는데, 지금 생각하면 엄청 이상하게 느껴진다.
반말이 한국 사회에서 싸움의 원인이 되는 것도 여러 번 목격했다. 주차 공간 때문에 주민끼리 싸우고 있는데, 한 사람은 계속 반말을 하고 다른 한 사람은 존댓말을 쓰고 있었다. 언성이 높아지면서 존댓말을 쓴 사람이 상대에게 “왜 계속 반말을 쓰느냐. 나는 동안이지만 나이는 먹을 만큼 먹었다. 도대체 당신은 몇 살이냐”고 큰 소리로 말했더니 반말 썼던 사람이 “내일 모레면 오십이다”라고 외쳤다. 내가 알기로는 30대 초반인데 하루에 10년씩 나이를 먹는 셈이 된다. 나이나 위치에 따라 말을 가려야 하는 한국 사회에서는 반말을 썼다는 것이 나를 만만하게 봤다는 느낌을 주고 그렇기에 충분히 싸움의 원인이 되는 것이다.
일본어에 능숙한 어떤 단체장과 일본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자주 방문해서 도움을 드린 적이 있었다. 그러던 중 새로운 비서실장이 왔다. 어느 날 어떤 행사 초대장을 단체장에게 전달해 달라고 부탁하고 며칠 후 다시 방문했다. 참석 여부를 문의했더니 단체장에게 물어보지도 않고 “안 가, 안 가”라고 그 비서실장이 답했다.
내가 수년간 교류하고 신뢰관계가 있는 단체인데, 새로 온 사람이 그 관계도 모르고 잡상인 대하듯 함부로 대하니 엄청난 모욕감과 분노를 느꼈다. 외국인이라는 이유로 말이 어눌하고 부족해 보여 그런 태도를 취했던 것이겠지만 비서실장이라는 사람이 겉모습만 보고 그렇게 하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한국에서 처음으로 느꼈던 모욕감이었다. 그런데 그 비서실장이 수년 후 비리가 발각돼 감옥에 갔다는 소식을 들었다. 인격이 안 되는 사람이니까 그런 태도를 보였구나 하고 이해했다.
일본에서는 ‘익을수록 고개를 숙이는 벼이삭’이라는 하이쿠(짧은 시)가 있다. 인간은 소우주라고 불리는 만큼 소중하고 막대한 가치를 지니고 있다. 그런데도 겉모습만 보고 사람을 무시하는 경우가 많다.
TV에서 재일교포 사장님의 다큐멘터리를 본 적이 있다. 그분은 일본인들을 고용하고 회사를 운영하고 있었다. 그 사장은 사원들의 신뢰를 얻기 위해 누구보다 일찍 회사에 출근해 직접 청소도 한다. 사원들이 출근할 때 웃으면서 인사말을 던지는 것도 먼저 한다. 일본 사회에서 존경받으려면 궂은일도 솔선수범해야 한다는 그분의 말이 인상적이었다.
얼마 전 TV에서 남편이 부인에게 운전을 가르치는 것과 관련한 실험을 보여줬다. 부부는 서로 반말을 했다. 잘못한 점을 지적할 때는 서로 격한 말을 하게 됐고, 그러다 보니 기분이 상하고 운전도 되지 않았다. 이번엔 ‘반말을 쓰지 않고 가르치라’란 미션을 받았다. 처음엔 존댓말 쓰는 게 어색해 보였지만 점점 칭찬을 하게 되고 마음이 안정된 부인은 운전도 잘하게 됐다.
반말은 친한 사이에서 친근감을 나누려고 할 때는 좋다. 그러나 상황에 따라 감정을 상하게 할 때가 있다. 다문화가정도 남편이 부인에게 반말로 대하니까 부인이 그 말만 배우고 시어머니에게 습관적으로 반말을 하는 경우가 있다고 한다. 내 남편은 사대부 집안 출신이어서 어머니가 아들에게도 존댓말을 쓰고, 부부간에도 존댓말을 쓰고 있다.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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