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선 프로기사를 위해 모든 걸 세팅하고 대접하잖아요. 그런데 독일에선 제가 일일이 일정 등을 챙겨야 하고, 식사를 해도 더치페이를 해요. 또 ‘싫으면 싫다, 좋으면 좋다’는 의사표시가 명확한 것도 낯설었어요. 본인이 원하는 걸 직접 얘기하는 게 그 쪽에선 자연스런 문화이고, 서로 오해도 하지 않아요. 저도 지금은 완벽히 적응했어요.”
10년 동안 독일에서 바둑 보급을 하고 있는 윤영선 5단(39)이 2년 만에 잠시 귀국했다. 2일 서울 성동구 마장로 한국기원에서 만난 그는 “제가 2006년 처음 독일에 갔을 땐 유럽 정상급이 저와 2, 3점 수준이었는데 지금은 정선(덤 없는 바둑) 정도면 될 것”이라며 유럽바둑 수준이 많이 올랐다고 전했다.
“물론 아직 길은 멀지요. 3월 알파고-이세돌 대국 때문에 바둑 자체를 처음 알게 된 사람이 많아요. 현지에서 바둑용품 판매하는 사람을 아는데 당시엔 평소보다 주문이 10배 이상 많았다고 하더군요.”
그는 주말엔 독일 주요 도시의 바둑클럽에서 강의와 지도기를 두고, 주중엔 온라인으로 강의를 하며 보급 활동을 하고 있다.
“다섯 살 아들, 네 살 딸 때문에 많이 돌아다니지는 못하는데 애들이 좀 더 크면 어린이 바둑 강의에 전념하고 바둑 카페도 열고 싶어요.”
그는 바둑도 충분히 한류가 될 수 있는데 현재는 중국만큼 지원하지 못하는 게 아쉽다고 했다.
“중국기원은 유럽 유망주를 데려다 몇 개월씩 교육하고 입단시켜 다시 유럽에 돌려보낸 뒤 우승상금이 1만 유로(약 1300만 원)인 대회까지 만들며 ‘중국=바둑’ 이미지를 확산시키고 있어요. 한국기원과 정부가 바둑 세계화에 좀 더 신경을 썼으면 해요.”
1992년 입단해 한국 여성바둑 1세대에 속하는 그는 1990년대 여성 바둑계에선 무적이었다. 여류프로국수전을 5번이나 우승하고 2001년 세계대회 호작배에서 우승했다.
“26, 27세가 되니까 결승에 올라가면 무조건 준우승만 하더라고요. 30세가 넘어가면 이창호 이세돌 같은 천재가 아닌 이상 버티기 힘들다고 봤어요. 그래서 해외 보급을 하겠다고 마음먹었는데 마침 독일바둑협회에서 요청이 왔어요.”
시원시원하게 얘기하던 그의 눈가가 잠시 촉촉해졌다. “바둑을 정말 좋아해서 시작했는데 한 번 정상에 선 뒤 그 정상을 지켜야 한다는 스트레스가 너무 심했어요. 마치 바둑이 절 억압하는 것처럼. 미운데 미워할 수 없는 관계라고나 할까요.”
독일로 떠난 이유로는 당시 사귀던 독일인 남자친구의 영항도 컸다. 유럽바둑대회에서 만나 이메일을 주고받다가 사귀었다. 윤 5단은 독일로 간 뒤 1년 반 만에 그와 결혼했다.
“남편이 다섯 살 어려요. 지난해 수학 분야 박사학위를 받고 올해 취직했어요. 남편은 아마 3단인데 결혼한 뒤로 저와는 바둑을 둔 적이 거의 없어요. 아마 마음 속으로는 바랐을 거예요. 하지만 결혼할 때 1급이던 실력이 3단까지 됐다며 같이 사는 것만으로 실력이 는다고 하네요. 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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