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엔 논리적으로 설명되지 않는 일들이 참 많이 벌어진다. 도무지 설명하기 힘든, 나만 겪은 묘한 경험을 입 밖에 낼 때 “그런 일이 있었어?”라면서 진심으로 귀 기울여 주는 사람이 내 주변엔 몇이나 될까.
‘가려진 시간’은 그런 생각이 들게 하는 영화다. 숲속 동굴에서 기이한 일을 겪은 뒤 ‘시간이 멈춰 버린 세상’에서 홀로 어른이 돼버린 성민(강동원)과 그를 믿어준 단 한 명의 소녀 수린(신은수)의 이야기를 담았다.
둘 다 외로운 아이였다. 13세 수린은 엄마를 사고로 잃고 새아빠와 ‘화노도’로 이사 왔지만 늘 외톨이였다. 성민은 아빠에게 ‘넌 어딜 가도 잘살 놈’이라는 소리를 들으며 보육원에 맡겨졌다. 둘은 비밀 아지트에서 둘만의 암호로, 둘만 아는 추억을 쌓아가며 친구가 된다. 자기보다 작던 동갑내기가 갑자기 185cm의 어른이 돼 돌아왔을 때, ‘네가 내 친구’라고 믿어줄 수 있었던 건 진짜 마음을 나눴기 때문이다.
영화는 4년 전, 깐깐하기로 소문난 미장센 단편영화제에서 10인 심사위원의 만장일치로 대상을 받으며 ‘괴물 신인’ 타이틀을 얻은 엄태화 감독의 첫 상업영화 도전작이다. 감독은 시공간이 멈춘 세계를 독특하게 그려냈다. 바닷물은 출렁대지 않고 젤리처럼 굳어 있다. 거리의 사람들은 정지화면처럼 멈췄고, 성민의 손에 닿은 물건들은 무중력 상태처럼 허공에 둥둥 떠다닌다. 모든 게 멈춘 그곳에서 흘러가는 건 오직 성민의 시간뿐이다.
어느 날 단짝 친구가 사라졌다. 며칠 뒤 웬 나이 든 사람이 나타나서는 말한다. “시간이 멈춘 세상에 갇혔다가 이제 풀려 나왔어. 내가 바로 사라진 너의 친구야.” 당신은 어떻게 반응할까. 온 세상이 다 그를 믿지 않아도, 나는 믿어줄 수 있을까? ★★★(별 5개 만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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