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이 만든 길 중 땅 밑으로 만들어진 가장 긴 것은 단연 카나트다. 카나트는 산악지대 만년설에서 흘러내린 물을 주거지까지 끌어오기 위해 만든 지하 수로다. 가장 먼저 카나트를 만든 것은 기원전 8세기 이란을 장악하고 있던 우라르투 왕국이다. 이때 만들어진 고나바드 수로는 지금도 맑은 물이 흐른다.”
책은 평생 길을 만들어온 엔지니어가 쓴 ‘길의 인문학’이다. 생각, 자아, 사람, 미지, 터널, 다리 등을 키워드로 삼아 길과 관련한 다양한 소재를 다뤘다. 토목공학 전문가인 저자는 “수만 km의 지하 수로는 자연에 대한 도전이고 척박한 땅에서 살아남기 위한 처절한 몸부림이 아닐 수 없다”며 “비가 오지 않는 척박한 땅에서 이슬람 문명이 발전한 데에는 사막을 옥토로 바꾼 카나트가 중요한 역할을 했을 것”이라고 말한다. 설산(雪山) 아래 사막 한가운데 카나트를 활용해 일군 농경지가 부채 모양으로 펼쳐져 있는 위성사진을 함께 싣는 등 풍부한 사진과 도판이 이해를 돕는다.
“미로가 길의 부재가 아니라 과잉을 의미한다면 도서관은 미로임에 틀림없다. (…) 그 길은 기꺼이 빠져들어 길을 잃고 싶은 미로이기 때문이다.”
저자에게는 도서관도 길이고 밤하늘이나 순례, 불교의 심우도(尋牛圖), 고대의 서사시도 길이다. 저자는 수십 년간 연중 한 달을 책을 읽는 안식월로 정하고 실천해 왔다고 한다. 책은 목적지에 도착하지 않고 그저 여정만을 보여준다. 저자는 “공간과 길이 왜 서로 이어져 있어야 하는지 보이는 과정은 우리가 사는 도시가 지향해야 할 공간과 길의 가치를 다시 생각해보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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