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도취로 점철된 끝없는 말장난의 향연이거나, 정보와 분석으로 뭉친 영감 덩어리이거나. 책은 다행히 후자에 가깝다.
유명한 대중음악평론가인 저자는 지난해 낸 늦깎이 첫 책 ‘전복과 반전의 순간’에서 이미 선례를 보여준 바 있다. 이번엔 더욱더 본격적이며 포괄적으로 입을 털었다. 1894년부터 2016년까지 한국 대중문화 역사 이야기를 들려줄 네 권 중 이번에 먼저 나온 두 권은 각각 1894년부터 1945년까지(부제 ‘사랑에 속고 돈에 울고’), 1945년부터 1975년까지(부제 ‘자유만세’)를 다뤘다.
우리 대중문화사의 출발점을 책은 동학의 노래, 교회 찬송가, 대한제국 때의 애국가로 규정한다. ‘희망가’에 담긴 일본과 서구 문화의 영향을 탐색하다가 1920, 30년대 추리소설과 연애소설 열풍, 무성영화와 유성영화 이야기로 빠르게 미끄러져 간다. 노래의 경우 가사와 리듬, 선율에 담긴 특성들을 토대로 사회적 배경이나 서구 문화의 영향을 읽어낸다.
당대의 사회적 배경과 문화가 불가분의 관계에 있긴 하지만 저자가 가끔 정치, 사회 이야기에 너무 많은 지면을 할애하기는 한다. 강의 녹취록을 정리한 책이다 보니 당시 저자가 객석을 향해 주저리주저리 풀어낸 이야기가 거의 그대로 담겨서인 것 같다. ‘대중문화사’라기보다 대중문화에 방점을 둔 흥미진진한 근현대사 강의록쯤으로 이해하는 게 낫겠다. 어려운 개념, 낯선 역사 이야기를 이만큼 쉽고 재미나게 풀어낸 책은 많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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