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옥에 살다/김경수]한옥, 美보다는 윤리를 중시할 때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11월 8일 03시 00분


김경수 명지대 건축대 명예교수가 2007년 경기 이천시 마장면에 지은 한옥 ‘다물마루’의 모습. 한옥 기와 지붕을 쓰면서 구조는 최대한 단순화해 현대적인 외관으로 꾸몄다. 김경수 교수 제공
김경수 명지대 건축대 명예교수가 2007년 경기 이천시 마장면에 지은 한옥 ‘다물마루’의 모습. 한옥 기와 지붕을 쓰면서 구조는 최대한 단순화해 현대적인 외관으로 꾸몄다. 김경수 교수 제공
김경수 명지대 건축대학 명예교수
김경수 명지대 건축대학 명예교수
 건축설계를 가르치고 비평을 하면서 줄곧 한국의 현대건축은 우리 고전에서 다시 출발해야 한다고 주장해 왔다. 이 믿음을 직접 실천하면서 지은 나의 두 번째 집이 다물마루이다. 현대식 콘크리트 구조에 한옥을 결합한 형식을 시도하여, 경기도에서 가 볼 만한 곳으로 선정되는 등 성과도 있었다.

 그 집을 군부대에 수용당하고 경사지를 활용해 석굴암식 한옥으로 시도한 것이 다물암이다. 반지하처럼 지붕에 흙을 덮고 남향 햇살을 최대한 끌어들여 에너지 절약을 확인하며 살고 있다. 한옥은 형태보다는 몸에 좋은 자연 재료와 환경친화적 구조에 주목해야 한다. 외형에 대한 완고한 향수는, 한옥의 좋은 전통을 새로운 건축으로 발전시키는 데 걸림돌이 된다.

 지금 이 땅에 태어나고 있는 아이들이 스무 살이 될 때쯤, 이 땅이 지옥이라며 한탄하던 상황은 벗어났다고 치자. 아마도 한국의 집, 한옥의 진화와 품격을 말하기 전에 한국 사람의 인성을 반성해야 할 것이다. 한옥은 한국인의 마음이 담기는 집이다. 모든 사람을 하늘이라 믿었고, 그 하늘을 섬기기 위해 밤새 음주가무를 했던 전통이 여전히 살아 있어 중국, 일본과 달리 우리는 ‘신(神)기’가 넘친다.

 청탁금지법 덕분에 이제 저녁 시간을 되찾아 아낀 기운으로 우리 건축, 미래의 한옥이 아름다움을 넘어 예의에 맞고 염치를 담게 할 수도 있겠다. 나보다 못한 이, 가난한 건축을 낮춰 보지 않게 하자는 것이다. 인간 심성의 빛과 희망을 담는 건축이 아니고, 그냥 옛것을 재현하는 박제, 명품, 골동한옥으로 남는다면 한옥은 관광용 세트일 수는 있어도 자랑거리는 못된다.

 피라미드를 비롯하여 세계 건축사의 거의 모든 위대하다는 건축은 피지배층의 피와 땀을 그 기초 아래 깔고 있다. 자본 형성 과정의 정당성과 관계없이, 건축은 돈의 힘으로 화려하고, 세밀하게, 고급스럽게 지어진다. 그러니 자본의 정당성이 전제되지 않는 한, 건축가가 설계를 통해 사회적 가치를 드러내는 일은 출발부터 한없이 어렵다. 그래서 다른 모든 예술 분야와 마찬가지로, 아니 더욱더 건축계에는 기존 권력과 금력에 순응하는 예술가로 적응하는 이가 다수이다.

 예술이라는 이름에 걸어야 할 기대가 아직 남아 있다. 예술은 기성 관념과 관습의 대세에 순응하는 것이 아니라, 비판하는 상상력에서 출발하는 것이므로. 그러니까 예술시장에서 비싼 값에 팔리는 작품들로 예술가의 수준을 판정하는 세태는 너무나 속되다.

 자본주의가 예술계까지 돈으로 점령한 듯 보이지만, 그 시장 바깥에서 진짜 예술가들의 반격은 지속되고 있다. 이 저항만이 인간 정신의 마지막 희망이다. 100년 이내에 인공지능이 인류를 지배할 것이 확실하다는 우리 미래의 섬뜩함을 이겨 볼 꿈도 여기에 있다. 지금 10대 청소년은 수명이 100세라는데 그들의 22세기까지도, 인간애라고는 전혀 없는 차가운 자본이 지배하게 버려둔다면, 인간은 자멸이 확실하다. 예술도, 미래 한국의 건축과 한옥도 돈에 대한 찬양을 거부해야 한다. 비용이 많이 드는 고급스러움에 대항하여 투박해도 에너지와 물질 자원이 적게 드는 디테일을 탐구해야 할 것이다. 그러려면 낭비의 욕망을 부추기는 눈의 주도권을 마음으로 옮겨야 한다. 아마도 시각적 아름다움에 대한 집착부터 버려야 할 것이다. 당신이 예쁘다고 넋 놓고 보는 사이, 그 시각적 아름다움은 인류를 불합리로 끌고 간다. 우리 눈을 매혹하는 건축은 지구의 파멸을 예고한다. 건축계에서 미(美)보다 윤리를 강조해야 한다는 깨달음은 좀 더 널리 퍼져야 한다. 건축도 사람도 예뻐서 슬프다.

김경수 명지대 건축대학 명예교수
#건축설계#현대건축#한옥#석굴암식 한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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