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11월 8일 화요일 맑음. 핼리혜성. #228 Vangelis ‘Rosetta’(2016년)
필레는 어두운 절벽 틈에서 발견됐다.
짐작했던 대로다. 햇빛을 받지 못한 그는 탈진해 잠들어 있었다. 로제타는 그런 필레를 조용히 내려다보았다. 10년간 65억 km를 날아왔다. 고향 지구별에서 연락이 왔다. 마지막 임무. 너무도 기다린 안식이다. ‘로제타, 67P에 충돌해 생을 마감하라.’
로제타는 유럽우주국(ESA)이 개발한 인류 최초의 혜성탐사선이다. 2004년 지구를 출발해 10년간 난 끝에 혜성 67P에 근접했고 품고 있던 탐사로봇 필레를 그 표면에 착륙시켰다. 2년간 67P를 돌며 11만6000장의 사진을 찍어 지구로 보냈다. 올 9월 30일, 로제타는 충돌 직전 혜성 15m 상공에서 역사적인 초근접 촬영 이미지를 전송하고 숨을 거뒀다. 기나긴 짝사랑의 끝은 죽음의 포옹이었다.
로제타의 이야기는 음반 ‘Rosetta’가 돼 최근 발매됐다. ‘블레이드 러너’ ‘불의 전차’ ‘1492 콜럼버스’의 음악으로 유명한 그리스 음악가 방겔리스가 탐사선 ‘로제타’에 헌정한 작품. 이야기는 우주인 안드레 카위퍼르스에서 비롯된다. 국제우주정거장에 파견된 그는 평소 팬이었던 방겔리스의 음악을 들으며 우주 임무를 견뎌낸다. 방겔리스가 우연히 그 소식을 접하고 카위퍼르스와 원격 교신하며 로제타 프로젝트와 인연이 닿는다.
73세의 방겔리스는 또 한 번 역작을 만들어냈다. 음악을 통해 무기물덩어리인 로제타에게 인격을 부여한다. 우주먼지를 통과하듯 몽환적인 공간감 사이로 이따금 피아노와 신시사이저가 만들어내는 감성적 선율은 영원한 무의 공간을 전진하며 로제타가 맞닥뜨리는 외로움과 두려움, 환희의 순간들을 잡힐 듯 그려낸다. 곡과 곡 사이가 끊기는 디지털음원 말고 음반으로 들어야 13곡, 53분간 소리로 이어지는 우주여행을 제대로 체험할 수 있다.
머나먼 허공 너머, 태양계를 껍질같이 둘러싼 오르트 구름을 생각했다. 아기 고양이처럼 거기서 깨어나 태양을 향해 달려드는 작은 혜성들을 생각했고 1986년 지구를 지나간 혜성에 관해 생각했다. 2062년, 난 어디에서 그 혜성을 다시 만날까. 슬픈 필레와 로제타의 이야기를 생각했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