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향기/독자서평]짧은 만남이 남긴 강렬한 여운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11월 12일 03시 00분


[YES24와 함께하는 독자서평]
◇체스 이야기 낯선 여인의 편지/슈테판 츠바이크 지음/김연수 옮김/168쪽·1만 원·문학동네

 ※지난 일주일 동안 303편의 독자 서평이 투고됐습니다. 이 중 한 편을 선정해 싣습니다.

 무언가에 홀린 듯 정신없이 소설을 읽어 나갔다. 이야기가 사라져 버리는 게 안타깝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빠져들었다. 한바탕 빨려들었던 이야기들이 어딘가에 실제로 존재할 것 같아서 잠시 천장을 보며 멍하니 생각했다. 체스에 빠진 사내, 한 남자를 지독하게 사랑했던 불행한 여인의 이야기 두 편. 무언가 다른 듯하면서도 닮은 그들의 이야기가 오래도록 잔상이 남았다.

 지금껏 살아오면서 만난 사람들을 떠올려 보면 기억에 남는 사람이 많지 않다. 살다 보니 잊은 것도 있겠지만 인생을 바꿀 만큼 강렬한 만남이 많지 않았던 것도 사실이다. 그런 의미에서 ‘체스 이야기’에서 화자와 B박사의 부에노스아이레스로 가는 배 안에서의 만남은 지극히 강렬한 것이었다.

 B박사는 체스를 절망적인 상황에서 배웠다. 히틀러 치하에서 게슈타포에게 체포돼 고문을 당하면서 인간에 대해 회의를 느끼게 될 때쯤 손에 쥐게 된 체스 교본이 그를 살렸다. 그렇게 배운 체스이기에 그는 거만한 체스 챔피언 첸토비치를 만났을 때 결코 지고 싶지 않았다. 첸토비치를 보면 히틀러의 이미지가 떠올랐다. 트라우마와 함께 체스를 배운 B박사가 히틀러처럼 느껴지는 상대와 경기하면서 트라우마에 정면으로 맞서는 대목은 극적이다.

 단편 ‘낯선 여인의 편지’는 한 남자를 오랫동안 사랑한 한 여인의 이야기다. 짝사랑과 스토커의 경계에서 어느 쪽으로 비중을 더 두느냐에 따라 이 여인의 사랑이 갈린다. 독자는 남자를 향한 그녀의 사랑이 진심임을 알지만, 오랫동안 지켜보면서 겨우 몇 번 스친 것으로 자신을 기억해주길 바라는 마음은 사실 무리다. 혼자 키워온 사랑이기에 남자가 자신을 스쳐 지나가는 사람으로 판단해도 어쩔 수 없다.

 여자는 좋아하는 남자 앞에서 자신이 누구인지 고집스러울 정도로 밝히지 않으면서, 남자가 먼저 알아보기를 바란다. 여자의 마음이 쌓이고 쌓이다 편지로밖에 고백되지 못할 때의 안타까움은 그런 사랑을 하다가 떠난 누군가가 있다는 것을 기억하게 할 뿐이다.

 모든 걸 바친 체스 게임과 안타까운 고백. 이렇게 무엇인가에 깊이 빠져버린 두 이야기를 만나고 보니 꿈을 꾼 것 같았다. 신기루처럼 사라져버린 이야기를 나만 특별하게 만난 느낌이었다.

장선아 전남 여수시 신기동
#체스 이야기 낯선 여인의 편지#슈테판 츠바이크#낯선 여인의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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