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향기]“IS 학살, 서구 자본주의 모순서 비롯됐다”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11월 12일 03시 00분


◇우리의 병은 오래전에 시작되었다/알랭 바디우 지음·이승재 옮김/96쪽·1만2000원·자음과모음

2015년 11월 13일 IS의 파리 테러 직후 시민들이 추모의 뜻을 모아 사건 현장에 놓은 꽃과 양초들. 동아일보DB
2015년 11월 13일 IS의 파리 테러 직후 시민들이 추모의 뜻을 모아 사건 현장에 놓은 꽃과 양초들. 동아일보DB
 최순실 게이트와 연이은 트럼프 당선 쇼크를 목도하면서 민주주의의 함정을 얘기하는 사람이 늘고 있다. 대중조작에 휘둘리기 쉬운 대통령 선출 시스템의 폐단을 지적한 것이다. 트럼프의 경우 외국인 이민자에 대한 블루칼라 백인들의 반감을 적절히 파고들었다. 돈이 있고 배운 백인들도 인종차별 발언이 옳지 않다는 걸 뻔히 알면서도 이른바 ‘샤이(shy·부끄러워하는) 트럼프’로 힘을 보탰다.

 이 책은 트럼프 당선을 전혀 다루고 있지 않지만 그와 맞물려 되새겨볼 만한 메시지가 적지 않다. 프랑스의 저명 철학자인 저자가 책을 내놓은 계기는 2015년 11월 13일 이슬람국가(IS)의 파리 테러. 그는 130명이 사망한 대규모 살상의 근본 원인이 무엇인지를 깊이 따져 본다. 결론부터 얘기하면 서구 시각에서 볼 때 외부가 아닌 내부에서 이미 오래전부터 곪아온 자본주의의 전횡에서 비롯됐다는 주장이다. 이 과정에서 서구와 비서구를 야만과 문명의 대립으로 보는 서구 중산층의 교만도 한몫했다.

 저자는 저소득 이민자들이 중심이 된 IS의 극단적인 폭력은 자본주의 소비와 생산에 참여하지 못하고 소외된 상황에서 시작됐다고 본다. 이들은 마치 없는 존재로 취급되고 허무주의에 내몰렸으며 끝내 좌절된 욕구를 폭력으로 발산했다.

 특히 1980년대부터 사회주의 폐기로 견제 받지 않은 자본주의는 국가마저 약화시켰다. 글로벌 금융위기 때 주범인 대형 투자은행들을 제재하지 못하고 정부가 나서 막대한 세금을 투입해 파산을 막은 이른바 대마불사(大馬不死)가 대표적인 예다. 자본주의 전횡은 국가의 최소한의 사회통합 조치도 훼방을 놓았다. 예컨대 프랑스 정부가 고용을 늘리기 위해 시행한 노동시간 감축 정책은 불과 5년 만에 폐기됐다.

 그렇다면 대안은 무엇인가. 저자는 중산층과 젊은이들에게 희망을 걸고 있다. 저소득 이민자들과 연대해 자본주의의 모순을 뛰어넘을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고 말한다. 트럼프가 자신의 견해와 대척점에 있는 이 책을 읽는다면 어떻게 생각할지 자못 궁금하다.

김상운 기자 sukim@donga.com
#우리의 병은 오래전에 시작되었다#알랭 바디우#is#최순실 게이트#트럼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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