족제비 꼬리털로 만든 황모필(黃毛筆)보다 좋은 것은 이 세상에 없다. 내 친구 이생(李生)이 글쓰기를 좋아하여 어떤 사람에게 부탁해서 그 붓을 얻었는데, 터럭이 빼어나게 가늘고 번질번질 윤기가 흘러 기가 막히게 좋은 붓이라 여겼다. 그런데 붓을 한번 털어 보니 조금 이상했다. 먹을 적셔 시험 삼아 글씨를 써 보니 구부러져 꺾이는 바람에 글자를 제대로 쓸 수가 없었다. 자세히 살펴보니 속은 개의 털로 채우고, 가늘고 윤기 나는 족제비 털을 겉에다 살짝 씌운 것이었다.
이생이 말하였다. “이것을 만든 놈은 남을 속여 먹는 재주가 뛰어난 것이 분명하다. 아무도 가짜인 것을 분별하지 못하기 때문에 그 간사한 상술이 통하는 것이다. 인심이 이렇게까지 야박해질 수 있단 말인가.”
조선 중기의 문신 계곡(谿谷) 장유(張維·1587∼1638) 선생의 ‘계곡집(谿谷集)’에 실린 ‘붓에 대한 이야기(筆說)’입니다. 글씨 쓰기 좋아하는 분이 좋은 붓을 얻어 기분 좋게 한번 휘두르려는데 아뿔싸, 그만 가짜 붓이었습니다. 인심의 타락을 하소연하는 친구에게 선생이 말합니다.
오늘날의 사대부(士大夫)라는 자들도 이 붓과 비슷하지 않은 경우가 드물다네. 몸뚱이를 번드르르한 옷으로 감싸고 언어를 그럴듯하게 구사하면서 걸음걸이를 법도에 맞게 하고 얼굴색 역시 근엄하게 꾸미고 있으니, 바라보면 모두 군자(君子)나 선비같이 여겨진다네.
그러나 그들이 남이 보지 않는 곳에 있으면서 이해(利害)가 걸린 상황을 만나게 되면 평소의 뜻을 완전히 바꿔 욕심을 마구 부리며, 속으로는 착하지 못한 마음을 품고 올바르지 못한 행동을 보이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네. 번드르르하게 외양을 장식했지만 속은 온통 개의 털로 채워져 있는 이 붓과 조금도 다를 바가 없네. 그런데 그들을 살피는 사람들이 제대로 눈여겨보지 않은 채 외양만 보고 속마음까지 믿어버리기 때문에 간사한 사람이 나라를 어지럽혀도 뉘우쳐 바로잡지 못하는 것이라네(觀人者不察也, 視其外而信其中. 故有奸人亂國而不可悔者也).
사대부라는 것들부터 가짜이니 붓 만드는 자도 제대로 만들 리가 없습니다. 붓은 글씨를 버리고 말 뿐이지만 가짜 사대부는 나라를 망칩니다. 등용하는 사람, 등용되는 사람, 감시하는 사람이 살피고 또 살피는 수밖에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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