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덜란드 사진작가 어윈 올라프씨
개인전 위해 한국 찾았다 시위 목격 “다음날 깨끗한 거리에 또 놀라”
서울 종로구 삼청로 공근혜갤러리는 방문하기 꺼려지는 전시공간이다. 갤러리의 문제는 아니다. 청와대에 인접해 있어 걸어 올라가든 차로 올라가든 “어디 가십니까?” 질문에 답해야 해서다.
한여름 어느 오후 택시를 타고 올라가다가 검문 경찰의 “선글라스 벗어 달라”는 요구에 “그쪽부터 벗고 요구하라”고 답했다가 실랑이를 벌인 적도 있다.
그곳에서 12월 11일까지 네덜란드 사진작가 어윈 올라프 씨(57·사진)의 개인전 ‘베를린, 웨이팅 & 로열 블러드’가 열린다. 연극무대 위 한 장면처럼 치밀하게 연출한 상황을 담아낸 작품으로 널리 알려진 인물. 한때 리바이스, 마이크로소프트, 노키아 등 기업 광고캠페인 작업도 맡았다. 그의 사진에는 군더더기 장식의 흔적이 없다. 구석구석 얼버무림 한 톨 없는 선명한 디테일의 이미지를 추구하지만 그 아래 깔린 내러티브가 단순하지 않다.
지난 주말 전시 개막을 맞아 한국을 찾아온 올라프 씨는 광화문광장 부근 서머셋팰리스 호텔에 묵었다. 12일 오후 촛불집회 소식을 접하고는 곧장 밖으로 나가 현장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으며 사람들과 대화했다. 암스테르담으로 돌아간 15일 밤 동아일보에 당시 사진과 함께 e메일을 보내온 그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경험한 신선한 충격의 밤이었다”고 했다.
“대학에서 저널리즘을 공부했다. 숙소가 마침 그 거대한 소용돌이 바로 앞에 있어 다행이라 생각했다.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모여 흥겨운 기운과 결연한 의지를 함께 분출하는 집회는 어디서도 보지 못했다. 어린아이를 데리고 나온 부모들, 학생과 노동자들, 노인들…. 참가자 모두가 서로를 존중하고 배려하는 모습이 특히 인상적이었다.”
올라프는 성별, 재력, 종교 등의 배경에 얽힌 현대 자본주의 사회의 부조리와 관습적 편견, 터부를 비판하는 시선을 담은 작품을 꾸준히 선보여 왔다. 얼핏 아름다워 보이기만 하는 문화와 예술의 산물이 때로 압제의 도구로 작용할 수 있음을 암시하는 작품을 내놓기도 했다. 이번 전시에는 계급적 권위의 이중성을 표현한 작품들을 걸었다.
히틀러를 따라 차려입은 듯 가죽장갑을 낀 독일 소년이 거만함 가득한 얼굴로 카메라를 응시하는 ‘베를린’, 등에 칼이 꽂힌 채 피 흘리는 로마 독재자 시저와 단두대에서 처형당한 마리 앙투아네트의 모습을 담은 ‘로열 블러드’가 묘한 울림을 전한다.
“집회 다음 날 아침 말끔히 정리된 거리에서 차분하게 새로운 일상을 맞이하는 사람들의 모습도 놀라웠다. 몇 시간 전 100만 인파가 모였던 공간이라는 게 믿기지 않았다. 나라에 위기가 닥칠 때 우리 네덜란드 사람들도 이런 행동을 보일 수 있다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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