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리지날리를 통해 한국 패션의 자존심을 세계에 전파했던 이신우의 딸 박윤정이 돌아왔다. 장인의 헤리티지를 이어받은 그녀는 지금의 가볍기만 한 패션에 ‘왜’라는 질문을 던진다.
지난 10월 18일 디자이너 박윤정(51)의 세컨드 브랜드 와이제이(WHY JAY)의 새로운 컬렉션이 공개되는 자리인 2017 S/S 서울패션위크. 돔 형태의 스크린에 흰 구름이 펼쳐지면서 쇼가 시작됐다. 강렬한 음악에 맞춰 런웨이 위를 걷는 모델들이 와이제이의 새로운 컬렉션을 입고 차례로 등장했다.
이번 컬렉션의 테마는 흰 구름을 뜻하는 ‘白雲’으로 비행기에서 찍은 구름 사진에서 영감을 받았다. 그래서일까. 비행기 창밖으로 잔잔하게 펼쳐지는 구름 풍경처럼 여유롭고 편안한 실루엣의 의상이 주를 이뤘다. 디자이너는 짧은 시간 안에 앞으로 다가올 트렌드와 디자인 콘셉트를 오롯이 보여줬고, 관객들은 그 찰나의 순간을 놓치지 않기 위해 오감을 집중시켰다. 마지막으로 모든 모델들이 등장하는 피날레 무대. 숨죽이며 쇼를 지켜보던 관객들의 박수가 쏟아지자, 박윤정도 긴장이 풀린 듯 환한 미소로 화답했다.
“기존의 ‘VACK YUUNZUNG’ 라인이 여성스럽고 아방가르드한 스타일이라면, ‘WHY JAY’는 중성적인 느낌의 톰보이 스타일로, 20~30대 여성들에게 합리적인 가격으로 좋은 퀄리티의 패션을 제시하는 브랜드예요. 론칭한 지 4년 정도 됐는데, 중국 광저우를 기점으로 중국 시장에서 입지를 다져가는 중이에요. 이번 컬렉션의 경우 기획부터 디자인, 샘플 작업까지 모두 광저우에서 진행했어요. 지난 여름내 중국의 동대문 시장으로 불리는 중따 시장 이곳저곳을 돌면서 땀 흘려 준비한 컬렉션인 만큼 좋은 반응을 얻어서 기뻐요.”
그는 와이제이를 통해 한 철 유행이 지나면 기억에서 사라지는 패스트패션에 ‘왜(WHY)?’라는 질문을 던진다. 와이제이의 시작은 디자이너들이 연예인들과 팀을 이뤄 경쟁하는 패션 서바이벌 프로그램인 SBS 〈패션왕 코리아〉였다. 여기서 1등을 차지했던, 섬세한 패턴과 패치워크를 통해 입체감을 살린 재킷은 와이제이의 콘셉트를 대표하는 의상. 자금력이 충분치 않아 처음에는 서울 동대문 두타에서 도소매 매장을 운영하며 중국 진출 가능성을 타진했던 박윤정은 2년여 전부터 본격적으로 중국 시장에 진출해 자리를 잡았다.
이번 와이제이 컬렉션은 ‘패션 코드 2015 F/W’ 이후 거의 1년 반 만에 선보인 것으로, 그동안의 노력이 빛을 발하는 자리였다. 그녀는 지금껏 중국 광저우에서 좋은 인력과 기술들을 접목해 와이제이 브랜드를 생산하는 데 최고의 인프라를 구축했다. 중국의 떠오르는 패션 메카, 광저우시 홍미안 지역에 도매를 담당하는 매장이 있으며, 중국 전역 2백 개의 멀티숍에 입점돼 있다. 물론 아직 큰 성공을 거둔 건 아니다. 하지만 성공으로 가기 위한 새로운 길을 찾아가고 있는 것만은 분명하다.
“글로벌이라고 하면 파리, 뉴욕, 밀라노, 런던 컬렉션 등을 떠올리잖아요. 거기에 많은 시간과 돈, 열정을 낭비하고 돌아오는 경우가 많은데, 와이제이는 처음부터 무한한 가능성을 지닌 중국 시장으로 눈을 돌렸어요. 중국 패션 마켓은 빠른 속도로 성장하고 있어요. 한국이 천천히 뛴다면, 중국은 지금 비행기를 타고 날아가고 있어요. 중국 전역으로 가서 가장 먼저 공항을 세울 거라는 비전을 갖고 도전하고 있어요.” 이신우·박윤정·윤니나 3대로 이어지는 패션 헤리티지 디자이너 박윤정 하면 어머니이자 ‘오리지날리’ ‘영우’ ‘쏘시에’ ‘이신우’ ‘이신우콜렉션’ ‘이신우옴므’ 등을 론칭했던 디자이너 이신우(75)를 빼놓고 이야기할 수 없다. 이신우는 한국 디자이너 1세대로 한국 패션을 세계에 알리는 데 큰 공을 세웠다. 어머니는 딸에게 그저 생물학적 유전자만 물려준 게 아니다. 패션에 대한 열정이나 고민, 노력 등도 몸소 가르쳐줬다. 그리고 이신우의 딸이라는 수식어가 언제부턴가 자부심으로 자리 잡았다.
하지만 박윤정이 처음부터 어머니의 뒤를 이어 디자이너를 꿈꾼 건 아니다. 집에 잘 들어오지 못할 정도로 바쁜 어머니의 직업은 어린 아이 눈에는 그리 멋져 보이지 않았다. 서울예술고등학교 재학 시절 우연히 KBS 뉴스를 통해 이신우 디자이너의 뉴욕 진출 소식을 듣게 되면서 생각이 달라졌다. 그때 디자이너가 되어 세계 무대에 진출해보고 싶다는 꿈을 처음 꾸게 됐다.
그렇게 마음속에 조그맣게 싹튼 디자이너의 꿈은 뉴욕 파슨스 디자인 스쿨에 입학하면서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졸업 이후엔 ‘이신우’의 뉴욕 지사를 거쳐 ‘오리지날리’와 ‘이신우’ 디자인실장을 맡아 역량을 키웠고, 그후 이신우 디자이너가 도쿄와 파리 컬렉션 등에 진출해 세계 무대를 누빌 때도, 연간 1백억원의 매출을 올리며 승승장구하던 회사가 외환 위기로 좌초됐을 때도 언제나 곁을 지켰다.
“어머니가 일생을 다해 일궈놓은 회사가 IMF 외환 위기 때 한순간에 채권단에 넘어갔어요. 자금 관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었는데, 그걸 너무 나중에서야 안 거죠. 그때는 ‘내가 왜 디자인만 하고 경영에 대해선 전혀 몰랐을까? 그런 걸 왜 배우려 하지 않았을까?’ 하고 스스로 자책도 많이 했어요.”
하지만 시련 속에서 내공은 더욱 강해지는 법이다. 디자이너 란제리 브랜드로 전무후무한 매출을 기록한 ‘피델리아’ 론칭부터 새로운 브랜드 ‘시누(CINU)’로 8년 만에 대중 앞에 선 이신우의 재기 컴백 쇼까지, 서로 밀어주고 당겨주면서 어려움을 함께 극복해냈다.
“소림사를 무대로 한 영화를 보면 스승이 제자에게 쿵푸 비법을 다 전수해주고 더 이상 가르칠 게 없다면서 하산시키잖아요. 근데 현실에선 하산이라는 건 없어요. 서로 배우고 가르치면서 평생 같이 가는 거죠. 스승이라고 해서 가르치기만 할 게 아니라 제자에게서도 배워야 해요. SADI(삼성디자인스쿨)에서 11년 동안 제자들을 가르칠 때, 그런 부분이 많은 도움이 됐죠.”
이제는 서로 눈빛만 봐도 뭘 원하는지 알 수 있는 두 사람의 차진 호흡은 이번 서울패션위크에서도 어김없이 빛을 발했다. 오랜 시간 스승을 도우며 제자의 도리를 다했듯이 최근에는 스승이 제자의 든든한 지원군이 돼주고 있다. 시침핀이 송송 박힌 바늘꽂이 쿠션을 손목에 끼운 채 패션쇼에서 선보일 옷들을 점검하는 모녀의 모습은 참 아름다웠다.
박윤정 디자이너는 ‘이신우의 딸’이 아닌 박윤정, 그 자체로서 빛나기 위해 뜨겁게 노력했다. 자신 앞에 쭉 펼쳐진 탄탄대로를 포기하고 일부러 굽이굽이 돌아가는 길을 택할 때도 많았다. 그리고 박윤정이 그랬듯, 그녀의 딸인 윤니나 디자이너 역시 할머니의 패션에 대한 순수한 열정을 잇고 있다. 윤니나 디자이너는 jtbc에서 방영된 패션 서바이벌 프로그램 〈탑 디자이너 2014〉에서 최우수상을 수상하며 한국 최초 3대 패션 패밀리의 탄생을 세상에 알렸다. 패션에 대한 사랑이 3대까지 전해졌으니 유전임에 틀림없다. 패션 DNA의 놀랍고도 신비로운 힘은 선을 긋거나 메모할 때, 빈 종이에 채워진 내용과 글씨에서도 발현된다.
“니나는 서양화를 전공해서 그런지 선이 굵어요. 그런 면이 저보다는 할머니를 많이 닮았어요. 천재성은 한 세대를 거른다고 하는데, 그런 면모가 보이는 것 같기도 해요. 물론 더 기다려봐야죠.”
2018년 1월 이신우 디자이너의 데뷔 50주년을 맞아 지금부터 차근차근 아카이브 전시회를 준비 중인 박윤정이 앞으로 그리는 꿈은 오랫동안 사랑받는 브랜드로서 대를 잇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선 언제나 새로워야 한다. 패션은 그 시대의 모든 문화를 아우르는 종합예술이기 때문에 시장성과 시대성을 담보하면서 미래의 가치를 담아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건 이신우 디자이너가 늘 박윤정에게 심어주고자 했던 가르침이기도 하다. 그래서 경제, 사회, 문화, 예술에 관한 기사 검색은 물론 중국 시장 진출을 위한 환율, 무역 등 다방면에 걸쳐 신경 쓰고자 노력한다.
사실 창작이란 것은 끊임없이 영감을 요구하는 작업이다. 그녀는 길을 걸을 때도 늘 주변을 관찰하고 사진으로 남겨서 자신만의 아카이브를 차곡차곡 쌓아가고 있다. 이렇게 열린 시각, 열린 마음으로 늘 새롭게 도전하고 그 도전을 통해 성장하는 디자이너가 되고 싶다.
“옷이란 게 3D 프린트로 그냥 나오는 게 아니잖아요. 수십 단계를 거친 끝에 만들어지기 때문에 그 모든 과정을 컨트롤하기 위해선 다방면에 걸쳐 알고 있어야 해요. 값싸고 질 좋은 옷을 만들려면 원가 절감이 필수고, 관련 노하우를 하나하나 얻기 위해서 직접 발품을 파는 거죠. 이렇게 중국 시장에서 하나의 시스템을 구축해놓으면 다음 세대가 더욱 쉽게 진출할 수 있는 토대가 마련될 거라고 생각해요.”
뒤에 가는 사람이 앞사람의 발자국을 잘 따라갈 수 있도록 올바른 발자국을 남겨주고 싶다는 박윤정. 이 모든 노력은 이신우에서 박윤정으로, 다시 박윤정에서 윤니나로 이어지는 디자인 유산을 잘 지켜내기 위함이다. 박윤정, 그녀의 회사 이름이 ‘Over The Rainbow’의 약자인 (주)OTR인 것도 우연은 아니다. 한때 어려움을 겪기도 했지만 희망을 잃지 않고 다시 일어섰던 것처럼, 앞으로 한국 최초 3대 패션 패밀리의 계보를 잇겠다는 굳은 의지가 읽힌다.
뿌리 깊은 나무일수록 튼튼한 가지를 뻗어 그늘이 크고, 그 그늘은 누군가에게 쉼터가 되기도 한다. 박윤정에게 이신우는 큰 나무 그늘이었다. 그리고 어머니가 그랬듯 자신도 딸에게 존재 자체만으로도 힘이 되는 큰 나무 그늘이 되기를 바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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