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창 시절 과학시간에 태양계 모형을 본 적이 있다. 교과서에서 삽화로도 봤다. 그러나 크기와 거리의 비례를 정확히 한다면 그런 모형과 삽화는 불가능하다. 이럴 땐 오히려 비유가 더 정확하다. 물리학자 김상욱의 비유를 토대로 재구성해 본다.
태양을 오렌지만 하게 줄여서 부산역 분수대에 놓았다고 해보자. 거기서 6m를 걸어간 후 아래를 쳐다보라. 무언가 반짝이는 게 있는가? 그렇다. 그 모래 알갱이가 바로 지구다. 아마도 찾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지구에서 가장 가까운 별은 어디쯤 있을까? 부산역에서 북동쪽으로 1600km를 걸은 후 발 밑을 쳐다보라. 그곳에 군밤이 있는가? 있다면 대단하다! 바로 그 군밤이 지구에서 가장 가까운 별 ‘센타우리’다. 지금 당신이 있는 곳은 일본의 북쪽 섬 홋카이도에서도 북쪽 끄트머리다. 오렌지에서 1600km 떨어진 곳에 있는 군밤! 찾기가 거의 불가능할 것이다.
우주는 생각보다 참으로 휑하다. 부산역을 중심으로 1600km 내에 달랑 오렌지 한 개, 모래 알갱이 몇 개, 군밤 하나만 있는 것이다. 나머지 99.999%의 공간은 텅 비어 있다. 이 정도면 아무것도 없는 것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무언가 물질이라 할 만한 것을 만난다면 우리는 기뻐 춤춰야 할 것이다. 살아 있는 생명체를 만난다면 경이로움에 눈물을 흘려야 할 것이다. 나와 비슷하게 생겼고 말하고 움직이는 종을 만난다면 우리는 모두 놀라 기절초풍해야 할 것이다. 기적보다 더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난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사람에게 감사해야 한다. 서로에게 기대야 한다. 외로움을 나눠야 한다. 인간을 사랑해야만 하는 과학적, 우주론적 이유이다.
과학은 어렵다. 그럼에도 나는 과학을 좋아한다. 어렵지만 좋아할 수 있는 건 이해할 수 있게 풀어 써주는 외국의 과학저술가들이 있기 때문이다. 그들과 번역자에게 감사드린다. 외국어로 쓴 과학책은 읽을 엄두도 못 냈을 것이다. 한국의 과학저술가들에게는 특히 더 감사드린다. 처음부터 우리말로 쓴 과학책이 아무래도 가장 잘 읽힌다. 나와 같은 대중에게 과학의 재미를 나눠주는 모든 분들이 고맙다.
최근 코미디언 친구들의 부모님 장례식에 세 차례 다녀왔다. 과학책은 우주는 텅 비었고 우리의 만남은 기적이라고 가르쳐주었다. 장례식장은 그 만남이 너무도 짧음을 일깨워주었다. 우리의 만남은 찰나의 기적이다. 우리의 사랑은 기적의 찰나이다. 우리가 사랑해야 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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